정책토론 : 아우토반 속도 제한
독일에 가기 전, 아우토반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곳이었다. 최저 속도 제한만 있다는, 모든 차가 속도 제한 없이 질주하는 곳이라니! 막상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버스에 타 보니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빨리 달리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런데 차창 밖으로 달리는 차들과 비슷하게 가고 있는 이 차가 시속 180km로 달리고 있어도 막상 내가 잘 인지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도심 안에서 시속 60km를 밟을 때와 고속도로에서 똑같은 속도로 차를 운전할 때는 분명히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속도감이 다를 테니깐. 내가 아우토반에서 느꼈던 안정감 있는 주행도 시속 150km가 넘는 속도였을 수 있겠지. 가끔 가다 밤에 택시를 타면 기사님은 마치 아우토반을 타고 가는 양 어둠에 덮인 서울의 한적한 도로를 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게 되는 속도.
이 속도의 상징인 아우토반이 지금 현재 독일에서는 아주 뜨거운 토론 소재다.
아우토반의 속도 규제라니
BMV, 메르세데스 벤츠, 폭스바겐 등 명차의 향연.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설렐 법한 이름을 단 차들이 쾌속 질주하는 곳인 아우토반의 속도를 시속 130km로 제한하자는 움직임이 독일 내에서 제기되었다.
아우토반은 현재 속도 제한이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변화를 주장하는 쪽은 토론의 긍정 측을 맡는다. 긍정 측에는 독일 정부 산하 석탄위원회가 서 있다. 이들은 “환경 보호”를 내걸며 속도 제한을 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확실히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형교통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토론의 부정 측은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들은 인간 자유의 상징이자 독일 자동차 기술의 집적이 그대로 표출되는 아우토반 속도 제한을 없애는 건 독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토론은 논제를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하기 때문에, 토론자는 논제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입장을 지지하게 된다. 긍정 측은 논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부정 측은 논제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토론자들은 논제에 관하여 긍정 측 또는 부정 측 입장을 선택하여 그 입장을 청중과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도록 토론을 수행해야 한다.
『토론, 설득의 기술』 p.37.
위와 같은 아우토반 속도 제한에 관한 논제는 논제의 3가지 종류 중에서 정책논제에 속한다. 사실 여부를 다루는 사실논제, 어떠한 가치를 중시할 것인지의 여부를 다루는 가치논제와 더불어 정책논제는 어떠한 정책을 도입할 것인지에 관한 논제다.
정책은 지금의 사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정책이 꼭 사회 정치적인 현안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결정 사항들이 정책논제인 경우가 많다.
곧 다가올 따뜻한 봄, 우리 회사는 어김없이 야유회를 가야 한다. 그동안 산으로 갔었으니 올해도 산으로 가겠지?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갑자기 손을 들고 누군가가 야유회 장소 제안을 한다.
"이번 야유회는 이전과 달리 바다로 갑시다!"
매번 산 속에서 한 야유회가 지겨워진 몇몇 사람들은 이 직원의 의견에 동조하여 바다로 가자고 주장한다.
정책 논제: 올해 봄 야유회는 바다로 가야 한다.
바다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야유회 장소를 정하는 토론의 긍정 측이 될 것이다. 현 상태와 달리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 측 말이다. 이들은 바다로 야유회 장소를 바꾸면 이전과 다른 분위기에서 팀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내기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입장의 부정 측은 어떨까, 이들은 새로운 곳을 가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야유회 장소 중에서 제일 좋았던 곳을 다시 가자고 제안할 것이다.
이처럼 정책 논제를 두고 진행되는 정책 토론은 우리의 실생활에 상당히 가깝게 맞닿아 있다.
『토론, 설득의 기술』은 정책토론의 구체적인 예시를 풍부하게 들어 토론이 딱딱하지 않고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설득의 기술임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