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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새벽배송

새벽배송 내가 써 보니 말야 : 에토스, 토론 설득의 기술

by 리얼디베이트



17세기 조선 한양에 사는 허생, 자고 일어나보니 이게 웬걸. 한양은 한양인데 2019년이란다. 자신이 살던 때보다 몇 백 년은 더 미래의 한양에 떨어졌다. 한때 한양에서 제일 큰 부자인 변 씨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하고 큰돈을 벌었던 적 있는 허생은 장사라면 아주 자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허생은 이 상전벽해의 현실 앞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저 시전에서만 필요한 몇몇 가지 물건을 살 수 있던 조선과 달리 셀 수조차 없을 수많은 물건들이 여기저기에서 팔리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이라는 요상한 도깨비 같은 뭔가를 통해서 손가락을 몇 번 누르면 며칠이면 내 앞에 필요한 것이 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일 놀라운 건, 밤에 시키면 내가 산 게 문 앞에 고이 놓여 있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허생이 본 새벽배송 서비스는 얼마나 놀라웠을까?



오늘 시키면 다음 날 오후에 바로 받아볼 수 있는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배송 서비스도 이제는 너무나 보통의 현실이라서 특별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새벽배송은 빠른 배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도 획기적인 서비스로 다가왔다. 밤 11시, 혹은 자정까지 시키면 다음 날 아침에 문 앞에 내가 시킨 식재료 등등의 제품이 놓여 있는 극강의 편리함. 신선한 제품을 바로 아침에 요리해 먹을 수 있고, 아이의 이유식을 바로 받아서 먹일 수 있다. 반려동물의 사료가 떨어져도 걱정이 없다. 동물병원이 열기 전에 집 앞에 배달돼 있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이 새벽배송 서비스에 과연 부작용이 있기는 할까?



얼마 전 tvN의 프로그램 <상암타임즈>는 “새벽배송의 두 얼굴”에 대해 다뤘다. 새벽배송 서비스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패널들. 새벽배송은 대한민국만 할 수 있는 편리한 문화이며 일자리를 창조하는 새로운 산업이라는 입장, 새벽배송의 과대 포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거나 새벽 사이 이뤄지는 작업 때문에 소음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부작용을 말하는 의견 등이 골고루 나왔다.


이어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다인 가구의 대표, 1인 가구 대표가 한 명씩 새벽 배송을 직접 체험해보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인 가구 대표인 황제성 씨는 아이에게 먹일 식품 및 다른 상품들이 꼼꼼하게 개별포장이 돼 있어서 안심이 되고, 신선도 면에서도 믿을 만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격 비교를 해 보니 마트에서 파는 가격보다 많이 비싼 경우도 있었다는 체험 소감을 전했다.


1인 가구의 대표인 지상렬 씨는 이전에 실패했었던 인터넷 쇼핑에 비해서 상품의 질이나 배송 서비스 등에서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지만, 과대 포장이 좀 걱정된다는 체험 소감을 전했다.


이렇게 직접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의 후기는 아마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이다. 직접 체험한 사람의 후기는 일반적인 인터넷 광고보다 더 효과적으로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왜 그럴까?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청중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인 세 가지 요소를 설명했다. 설득의 3요소에는 사실이나 자료 등을 근거로 들어 청중을 논리적으로 이해시켜 설득하는 로고스, 청중이 공감하도록 만들어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파토스, 그리고 에토스가 있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이 가진 인격이나 지위, 전문성 같은 그 사람의 고유한 성질로서 신뢰를 주어 설득을 이끌어내는 요소를 말한다. 에토스를 활용한 설득이란 화자와 화자가 제시한 근거의 출처에 대한 신뢰로 인해 청자가 설득되는 것을 말한다.
『토론, 설득의 기술』, p.113.



믿을 만한 사람의 말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시간을 걸쳐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그 말이 맞든 안 맞든 나는 그 말의 진실을 철저하게 가릴 때 드는 수고를 덜고 그 말을 자연스레 믿게 된다. 이 과정은 상당히 효율적으로 보인다.




내가 걸린 병에 대해 친구가 해 주는 조언과 의사 선생님의 조언, 이 둘 중 어느 것이 믿을 만한가? 우리는 의사 선생님의 의학 지식이 수년간 쌓아온 그의 에토스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의사 선생님의 에토스는 너무나 강력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내 병이 나으려면 이 분의 말씀을 무조건 따라야겠구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에토스는 주제와 관련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새벽배송을 직접 이용해 본 경험, 이것은 충분한 에토스가 될 수 있다. “내가 새벽배송 시켜서 먹어보니깐 말이야, 이런 점이 좋더라.” 혹은 “이런 점이 너무 마음에 걸리더라.” 식의 표현은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니깐 이용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에토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토론에서는 이와 같이 자신의 경험을 에토스로 만드는 것, 혹은 유명인의 에토스를 차용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설득의 기술이 된다. 허생이 새벽배송 서비스를 이용해 보게 하려면 이 에토스가 키포인트가 될 것이다. 허생에게 에토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용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허생에게 이 서비스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 설득의 기술』은 설득의 요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포함하여, 토론을 준비하여 실전 토론을 할 때 활용하면 아주 효과적인 노하우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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