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움직이는 파토스적 설득
뭄바이, 인도의 최대 상업도시이지만 이면에는 1600만 명 규모의 아시아 최대 빈민가가 위치한 도시. 실제로 가 본 뭄바이 역시 엄청난 빈부 격차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첫인상을 남겼다. 크고 높은 빌딩이 가득한 상업지구가 인도의 성장세를 가늠하게 하는 반면, 엄청난 규모의 빨래터인 도비가트는 수많은 도비왈라[빨래꾼]들과 그들이 실어오고 빨래하는 빨랫감들로 가득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카스트제도의 계급에도 들지 못한다는 불가촉천민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곳은 뭄바이에 여행 가는 사람은 누구나 들러야 하는 필수 관광 코스였다. 이 곳에서는 사진 촬영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문만 여행 책자에 적혀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뭄바이의 다라비라는 곳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최근 슬럼 투어의 중심지로 손꼽힌다. 슬럼 투어, 일명 가난 투어리즘은 빈민가를 방문하여 빈민의 삶을 체험하는 여행 상품이다. 도시의 빛나는 모습만 보기보다는, 그 이면을 보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은 슬럼 투어 상품을 통해 빈민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여행지의 진짜 모습을 느끼고자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두 시간 동안 빈민가 곳곳을 현지 가이드와 돌아다니는 것으로, 정형화된 관광 코스와는 차별되는 코스임엔 분명하다. 다라비 투어 이외에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타운십 투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 투어 등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 슬럼 투어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찬반 의견이 상당히 나뉘게 된다. 슬럼 투어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슬럼 투어가 빈곤에 대해 사람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불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 투어 상품을 통해 현지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고, 수익의 일부를 빈민가 주민들에게 환원하여 그들에게 경제적 수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슬럼 투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투어가 가난을 상품화하며, 부유한 이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슬럼 투어를 금지해야 한다”라는 논제로 정책토론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우리는 이 슬럼 투어가 윤리적으로 바람직한지와 같은 ‘가치’에 대해서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현재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토론자는 청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법은 파토스라는 설득의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다.
파토스는 청자들이 갖는 감정,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파토스를 활용한 설득은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으로, 화자의 주장에 청자가 공감, 즉 마음을 함께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청자가 경험하였던 상황을 상기시키거나 그에 따른 감정을 유도한다면 쉽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토론, 설득의 기술』, 110쪽
구호 단체의 여러 매체 광고를 보면 모금을 위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이미지, 영상 등이 적나라하게 나오곤 한다. 밥을 제때 먹지 못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마음속의 연민을 자연스레 불러일으킨다. 이와 같은 광고는 파토스를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모금을 촉구하는 설득의 방법을 쓰고 있다.
파토스적 설득 중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슬럼 투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스토리텔링을 하며 청자를 몰입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온 빈민가 아이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면 청자는 그 아이의 삶에 대해 상상하고 찬성 측의 논리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을 활용할 때 찬성 측은 슬럼 투어가 주민들을 마치 동물원 우리 속의 동물들처럼 바라보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청자가 더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감정을 움직일 때 설득의 확률 또한 올라갈 것이다.
한편 슬럼 투어를 금지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쪽에서는 슬럼 투어를 통해 얻게 된 이익이 어떻게 주민 혹은 마을을 변화시켰는지에 관해 주민의 관점에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은 슬럼 투어의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의할 확률이 높아진다.
파토스는 감정을 움직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상당히 강력하다. 그러나 감정은 지속되기가 어렵고 감정만을 앞세운 노골적인 설득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토론에서는 적절히 로고스[논리적 설득], 에토스와 함께 파토스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토론, 설득의 기술』은 앞에서 소개한 파토스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사례에서 설득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쉽게 설명하고 나아가 토론과 설득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