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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우 Aug 07. 2018

제주만의 이사풍습, 신구간

쉽게 보는 부동산, 드라마 'SBS 인생은 아름다워'

제주만의 이사풍습, 신구간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작 전부터 상당히 뜨거운 이슈를 담고 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것이 화제성을 띄더니 제주도를 주 무대로 한 최초의 정극이라는 점과 당시 아직은 불편했던 동성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제들과 염려를 뒤로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화제성과 염려를 잘 버무려 담아낸 가족드라마로,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드라마로 인식이 상당히 강하고 그 여운이 아직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이러한 제주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적 습관이 꾸준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구간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제주에만 있는 신구간은 대체 무얼 말하는 지 본 드라마를 통해 알아본다.
 
#제주도의_이사풍습 #신구간 #연세 #손_없는_날
 
[SBS] 인생은 아름다워


본 드라마는 김수영이 극본을 쓰고 정을영이 연출한 주말드라마로 제주라는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 사회적 테두리 안에서 가족에게 주어진 정당한 삶을 묵묵하고 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이다. SBS에서 2010년 3월 20일부터 2010년 11월 7일까지 총 63부작으로 방영되었다.



Scene
 
성소수자인 태섭(송창의 분)은 서울에 출장을 다니러 갔다가 제주로 내려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같은 입장인 경수(이상우 분)를 만나게 된다. 만나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태섭과 경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경수는 이미 가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한 뒤  쫓기듯 제주로 내려온 상태였고 태섭은 경수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돈을 가족들에게 알리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은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착잡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 태섭과 경수가 식탁에 앉아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때 태섭이 경수에게 이사계획에 대해 말을 꺼낸다.


△ 태섭과 경수의 대화


“분가 허락받았어. 잠깐 빈 시간에 두 군데 봤는데 그 중 하나로 결정하려고.”
“여기로 안 들어오고?”
“그건 좀 그래. 어차피 큰 사기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너무 그런 것 같아. 가까운 데야. 차타면 한 3, 4분?”
“룸메이트라고 하면 되잖아.”
“아니니까”
 
장면이 바뀌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족들에게 밝힌 태섭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쓸쓸히 짐을 챙겨 제주시내의 원룸으로 향하기 전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다.


△ 이사하는 태섭을 배웅하는 가족들


“정말 아무도 안 따라가도 돼? 섭섭하지 않아?”
“괜찮아. 정리할 것도 짐도 없는데 뭐.”
“엄마 반찬 너무 많아. 묵혔다가 버리지 말고.”
“경수나 좀 줘”
“네. 고맙다. 너도.”
“어. 형이랑 악수 이상해요. 엄마.”
“미안하다.”
“아이 씨 뭐가.”
“초롱아~”
“우리는 이렇게 하자 오빠.”
“오빠 축하해. 잘 지내.”
 
Explanation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평소에도 공부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태섭. 이런 태섭은 이런저런 이유로 출근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해 분가를 결심한다. 물론 태섭의 커밍아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원래 결정했던 이사였으므로 태섭은 덤덤히 자신의 이삿짐을 꾸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제주는 내륙에 있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이사풍습이 내려오고 있다.
바로 신구간(新舊間)이라는 것이다.
 
- 신구간의 이해
 
제주에만 존재하는 신구간은 내륙에 살고 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거나 들어는 보았을 ‘손 없는 날’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제주의 토속신앙에 의해 일 년에 한 번 있는 신신과 구신의 교체기간이 신구간이라는 것인데 매년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땅에 있는 인간사에 대한 일들을 관리하다가 신구간이 되면 땅에 있던 신은 위로 올라가고 하늘에서 새로운 신이 내려온다는 것이다.
바로 신의 교체기, 즉 신이 없는 이 시기에 제주사람들은 이사를 하거나 리모델링 등을 한다. 대략적으로 신구간에 제주사람들의 15% 정도가 집을 옮기거나 수리를 한다고 하니 상당히 영향력이 큰 풍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독특한 제주만의 이사풍습은 1737년 조선 영조 때부터 전해져 온다는 기록이 있는데 우리나라 24절기 중 대한(大寒)으로부터 5일 후에 시작해 입춘(立春) 3일 전까지를 의미한다.


△ 과거 제주도 사람들의 이사모습


- 신구간의 유래
 
사실 신구간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주는 지역적 특성상 한 겨울에도 거의 대부분 영상의 날씨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평균기온을 분석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영상 5도 아래로 떨어진 날은 일 년에 대략 열흘 정도에 불과할 정도이니 말이다. 영상 5도 아래로 떨어진 약 열흘의 기간이 신구간과 거의 일치를 하고 있는데 이는 문헌으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
기온이 영상 5도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기본적으로 세균들이 활동을 할 수 없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염려가 적어지게 되므로 이 기간을 새로운 신과 예전의 신이 교차하는 교체기 정도로 인식하고 그 기간을 통해 자신들의 이사나 집수리 등 활동에 대한 타당성을 부여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지금이야 병원이나 약국을 흔하게 찾을 수 있지만 과거 제주에는 질병이나 상해를 입는다면 그야말로 낭패였을 테니 어떤 믿을만한 경우의 수를 두고 싶었을 것이다.
 
- 신구간이 만들어 낸 임대방식, 연세제도

제주의 경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구간이라는 기간이 정착되면서 다른 내륙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임대방식이 태동하게 되었다.
제주의 독특한 임대방식으로 전해지고 있는 연세는 1년간의 월차임(월세)을 한 번에 내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신구간에 시작해서 신구간에 종료하는 방식이다.
섬이라는 독특한 지역적 특성상 월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내륙으로 떠나버려 생기는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얼마나 그런 일이 많았으면 이런 임대방식이 생겼을지 다소 의아하기도 하다.


△ 제주의 모습이 물씬 풍기는 동틀 녘


- 손 없는 날
 
손 없는 날은 예로부터 악귀가 없는 날을 의미한다. 즉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한 날을 의미하는데 이때 손은 손님을 줄인 말로 날 수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면서 사람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을 해코지한다는 악귀나 악신을 뜻한다.
손 없는 날은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바로 이날에 이사나 결혼 등 주요행사 날짜를 정한다. 반대로 손 있는 날은 악귀들이 그 날짜와 방향을 바꿔 옮겨 다니며 훼방을 놓아 이날에는 주요행사를 진행하거나 이동하기를 꺼리게 된다.
손 없는 날은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에서 손 있는 날을 제외하고 어느 방향에도 악귀가 활동하지 않는 음력으로 끝 자리수가 9와 0인 날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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