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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Aug 31. 2020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다시

여름 내내 성난 얼굴을 하며 내리쬐던 태양도 그 기분이 풀린 듯,  더위도 한 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이 지나면 곡식이 무르익고 가을이 되면 수확하 듯, 인간도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가을에 접어들면 연초에 계획했던 일을 점검하고 하나씩 수확하며, 더욱 성숙해진다.


20년 전 대학에 입학하던 날을 기억한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PC통신을 경험하다가 인터넷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은 나는 1999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2000년 1월 1일 자정이 되면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대학 입학 축하하고, 열심히 공부해"


우리나라만 유독 21세기가 왔다며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2000년이다.


2000년 3월 2일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촌스러운, 짙은 연둣빛의 슈트를 빼입고 대학 동기들과 만남을 가졌다. 사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교복 외의 옷을 입을 일이 별로 없었기에 옷을 직접 사본 경험이 적어,  동네 시장 옷가게 들렀다가 여주인의 화술에 넘어가, 연둣빛 슈트를 산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촌스럽고, 대학 동기들도 그러한 나를 굉장히 이색적으로 받아들였으리라.


나는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교로 진학한 동창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교우관계에서는 학과 동기들과 친하게 어울려야 했는데, 여초 학과에 위화감을 느끼고, 고등학교 4학년을 방불케 하는 무거운 학습량으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학과 수업에 충실하던 중,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날이 많아졌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고, 2학년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일본으로 1년간 유학을 갔다 왔다. 그리고 4학년 때 다시 일본 정부초청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년간,  일본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렇게 일본과 계속 연이 닿아, 취업까지 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던 나의 삶은 쉽지 않았다.


사기업에서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전문 분야에 몰두하는 학자로서의 삶이 나에게는 더 맞으리라 생각해서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였지만, 학자로서의 삶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받은 후, 사기업 취업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 그 후회가 가슴속에 한으로 남았는지, 고등학교 동창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푸념처럼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때말야, 대학원에 진학을 해야했어, 바보같이 겁만 많아서..."


2009년 5월에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완전히 끝내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고향집 근처의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잠시 교편을 잡았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범대학에 진학을 하였지만, 사춘기 학생을 지도한다는 것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2000년 대학 입학 후,  10년이 더 흘러 2010년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점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가졌던 자신감과 꿈은 사라지고, 현실 타협적이고, 소심해지고,  실행력을 상실하고, 안전한 길로만 가려하는 나로 바뀌어 있었다.


퇴보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전두엽을 마비시켜,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느낌이다. 꿈을 상실한 대가가 나에게는 너무 가혹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면, 내 꿈을 향해 돌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 꿈을 찾아 다시 돌아가려고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감을 잃은 나는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소설 '연금술사'로 유명한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가 한 말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떠오른다.

"꿈을 이루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당시의 나를 딱 꼬집어서 하는 이야기 같다. 꿈을 찾아가기 위해 다시 핸들을 잡았는데,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목적지 초입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 돌아보면 인생 최대의 오점이다. 목적지 초입에서 덜컹거리더라도 끝까지 핸들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가속페달을 더 힘껏 밟아서 돌진했어야 했다.


그 후로 10년이 더 흘렀다. 인생의 방향이 한 번 더 바뀌었다.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요즘 시대에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어딨냐?"


그래,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현 직장에 충실할수록 나의 인생은, 수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0으로 수렴한다.


두렵다.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갈 의지의 불씨는 이미 꺼진 지 오래다.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해, 삶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무에 결박되어 있는 것처럼,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니, 내가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나를 만들어가고, 인생이라는 큰 늪에 빠져,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야, 인생 뭐 별 거 있어?"


그렇다. 세상에 꿈을 이룬 사람이란 많지 않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기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을 쉽게 생각하며 내뱉은 말은 부끄러워지게 된다.


봄이 오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개울이 시원하게 느껴지듯이, 자연을 가까이하면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기 쉽다는데,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다시 가을이 찾아왔건만, 나의 감각기관은 방향을 상실한 채, 제자리를 맴돈다.


앞으로 10년 후, 그리고 다시 10년 후의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아찔하다.


나에게 가을의 도래는 요원한 바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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