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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Sep 14. 2022

바퀴벌레와 똥

아침부터 첫째 아이의 우렁찬 목소리에 잠이 깼다.


"바퀴벌레들은 여기저기 똥도 쌌어요"


나는 숙면을 잘 취하지 못하는 편인지라 기상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알람을 맞추지 않더라도 일찍 눈이 떠지기 때문에 항상 1분이라도 더 길게 잠을 자기 위해서이다.


아이가 깔깔 웃으면서 반복한다.


"바퀴벌레들은 여기저기 똥도 쌌어요"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비몽사몽 중에 아이가 보는 그림책을 봤더니, 위의 문구와 함께 바퀴벌레가 지저분한 주방에서 기어 다니는 장면이 있는 것이었다.





"이게 그렇게 웃을 일인가?"


나는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당시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것이다. 형이랑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형제가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시끄럽다고 그만 웃으라고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아직 날아가는 새 똥구멍만 봐도 웃길 때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른에게는 바퀴벌레도 그렇고, 똥도 그렇고 불쾌감을 줄 뿐, 그다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첫 째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그와 같이 반복하였을 것이다.


어른도 아기였을 때는 순백의 천사였다. 아빠가 개굴개굴 소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웃고, 집 안의 한쪽 모퉁이에 숨었다가 나타나면서 "까꿍!" 하고 살갑게 다가가 주는 것만으로도 하하호호 웃으며 쓰러지던 아기였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은 한국계 미국인 수학자인 허준이 교수님께서 수상하셨다는 뉴스를 보았다.

선하고 순수해 보이는 교수님의 앳된 인상이 아기의 모습을 잃지 않은 듯 보였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을 우리나라에서 보내고 서울대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자퇴를 하였는데,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이유라고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운영 시스템이 커다란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괴물이 투명한 색채의 허준이라는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모교 졸업식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취업준비, 결혼 준비, 육아·승진·은퇴·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 듯 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이 대목을 접하는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느 대학교 졸업식 축사와는 달리 새로운 출발을 앞둔 졸업생들을 걱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또한 후배들 앞에서 축사를 하고는 있지만, 학창 시절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 졸업생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졸업 후 취업, 결혼, 승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고 좌절과 실망을 맛보며 자신의 모습을 잃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삶이 이어질 테니까.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 장래희망 조사에 대통령, 의사, 변호사, 판사의 꿈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색이 바래,

그저 안정된 직장을 찾는데 시간을 쏟고 돈 잘 버는 직업이 최고가 된 지 오래다.


지난 몇 년 간 집값이 급등하면서 2030 세대들의 절규하는 목소리,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내 집 마련이 늦었을 뿐인데 가족을 위한 작은 집 한 칸 마련하기가 더욱 힘들어져 계층의 사다리가 완전히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닌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캠퍼스를 누비며 잔디밭에서 통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낭만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단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는데, 지금은 대출을 과하게 "영끌"해서 집을 마련했다는 이유로 금리 상승과 함께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바퀴벌레"와 "똥" 이야기를 하지만, 세상이라는 정글에 갔을 때, 맹수들의 이빨에 물어뜯겨 상처를 입었을 때는 더 이상 우리 아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엄마·아빠는 순수한 모습을 잃었지만 내 아이만큼은 나 자신을 잃지 않기를, 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신에게 기도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걱정이 많았다.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낯가림이 심한 아이인지라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밥은 잘 먹을까? 소변을 참는 것은 아닐까?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역시나 밥을 한 술도 뜨지 않고, 소변은 집에 돌아와서야 마음 편히 보고,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도 쉽지 않아 웃는 날이 적었다.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본디 천성이 그런 지라 성격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1년도 더 지나서야 겨우 어린이집 생활에서 안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으로 보면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내성적이고 낯을 가린다기보다 새하얀 마음의 캔버스의 크기가 다른 아이보다 몇 배나 커서, 그것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혀나가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넓은 캔버스에 담임 선생님 얼굴·아이들 말소리·어린이집 장난감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20년도 더 전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가족 소개 장면을 교재에서 보았는데,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 현재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엄마, 아빠, 나, "우리 집 고양이 토리"라고 소개하는 어느 가족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만큼 반려동물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 지방자치단체에는 가족의 일원인 반려동물에게 동물등록·중성화 수술 같은 동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물과 사람 통합복지지원사업"이라는 시책을 펴고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주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반려동물은 주인에게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며, 사랑을 주는 주인의 말에 복종한다. 대표적으로 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는 반려동물로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에 대한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희디흰 목련과 같은 아이들도 세상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경찰관 아저씨·소방관 아저씨·길가는 할아버지·지나가는 또래 아이, 강아지·고양이·토끼, 잠자리·나비·메뚜기·파리·모기, 흙탕물·나뭇가지·강아지풀·땅에 떨어진 모과.


성격이 고약한 동네 할아버지도 아이들에게만은 그가 살아온 세월의 신념을 내려놓는다. 누런 치아를 드러내 웃으면서 아이에게 눈깔사탕도 나누어주고 고이 접어서 한쪽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천 원짜리 지폐고사리 같은 아이 손에 쥐어준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긴 시간을 거쳐 쌓인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순간이다.


"바퀴벌레들은 여기저기에 똥도 쌌어요"


누군가에게는 더러운 문장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속삭임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웃음소리가 멀리 퍼져나간다.

이 순간을 놓치고 잊고 싶지 않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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