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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빠 Sep 17. 2020

글쓰기 유전자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이다. 2000년 전후로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되면서, 그 후로 홈페이지, 각종 블로그, 싸이월드 등 가상의 사적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의 별 볼일 없는 글쓰기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후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아기가 생기고, 육아 기록을 남기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지 않고 1~2주 정도는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글감이 떠오르면 하루에 두 편이든 세편이든 키보드를 두드리며 떠오른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우리 아기는 지금 22개월이다. 한창 세상에 관심이 많을 시기이고, 방바닥의 티끌까지 유심히 관찰하며, 모방을 특기로 한다. 하루는 아기를 안은 채로 화장실 문을 열어야 했는데, 두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여서 발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 후로 아기는 한 손으로는 벽을 짚고 반대쪽 발로 문을 차서 화장실 문을 열어젖힌다.


아기는 성장함에 따라 발달 검진을 받는다. 정식 명칭은 '영유아 발달선별검사'라고 하며, 아기의 신체 근육, 인지, 언어, 사회성 등 다양한 분야의 발달상황을 체크한다. 근육 발달 중에는 연필을 어떤 식으로 쥐는지에 대한 문항이 있으며, 연필의 윗부분을 잡는지, 중간 부분을 잡는지, 아랫부분을 잡는지에 따라 점수가 매겨질 정도로 연필 쥐기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 아기는 최근에 부쩍 볼펜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 색연필은 성에 차지 않는지, 쥐는 대로 다 부러뜨리고는, 최애 필기구가 볼펜으로 바뀌었다. 볼펜은 힘을 많이 주지 않고도 쓱쓱 잘 써지고, 색감도 뚜렷해서, 흐릿한 색연필보다 마음에 드나 보다. 최근 코로나가 다시 확산됨에 따라 아기와 많은 시간을 집안에서 보내고 있는데, 요즘따라 볼펜 잡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내가 볼펜 잡는 손 모양을 유심이 관찰하더니, 이내 곧 모방하여,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검지의 첫마디 지문 부분을 볼펜 부위 중에서도 심이 나오는 곳 가까이 위에 놓고, 엄지의 첫마디 지문 부분과 중지의 첫마디 한쪽으로 볼펜을 사이에 두고 힘주어 고정시키는 것이 꼭 성인이 쥐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고는 '아빠의 글쓰기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마냥, 자신의 몸집보다 3배는 족히 커 보이는 전지(全紙) 위에다가 일필휘지(一筆揮之)하듯이 자유롭게 선을 긋는다.


우리 아기는 볼펜을 잡고 그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아기가 글자를 일찍 깨우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법과 철자를 익히는 뇌는 3세부터 발달하기 시작해서 7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7세 이후에 글자를 배우기에 가장 좋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글자를 배우면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그림책을 볼 때,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상상하기보다는 글자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기의 호기심을 꺾을 수는 없다. 아기가 스스로 아직 글자를 쓸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빠, OO 써줘!"라면서 글자를 써달라고 하는데 부모가 된 입장에서 안 써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실적 타협이라고 할까, 글자를 'ㄱ, ㄴ, ㄷ, ㄹ'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치지는 않고, 아기가 호기심을 가지면 단어를 통째로 써서 읽어주기로 했다. 예를 들면, '호랑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호' , '랑', '이' 이렇게 한 글자씩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가르쳐 준다. 그러면 아기는 '호랑이' 글자와 그에 맞는 소리를 머릿속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아기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고 그에 맞는 단어를 써주면 아기는, 아빠를 따라서 글자를 써보고 싶은지, 이내 종이에다가 낙서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또 뭔가 그려달라 하고, 나는 다시 그에 맞는 단어를 적는다. 한창 뭔가를 끄적거릴 나이라고는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빠를 닮아서 인지, 볼펜 잡는 폼부터, 긁적거리는 모습까지 나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학적으로 아기는 말을 시작할 때 모음은 후설 모음(後舌母音 ; ㅡ, ㅓ, ㅏ)을 먼저 하고, 자음의 경우 연구개음(軟口蓋音 ; ㄱ,ㄲ,ㅋ)과  양순음(兩脣音 ; ㅁ, ㅂ, ㅃ, ㅍ)을 이른 시기에 한다. 그래서 '까까'라든지 '엄마' '아빠'라는 말을 아기들이 이른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 아기는, 내가 아기를 볼 때마다 "아빠 해봐! 아빠! 아빠! 아빠!" 하며 정성을 쏟은 덕분(?)인지 그 시기에 발음하기 쉬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다.


아기가 몇 년 후면  스스로 글자를 쓸 것이다.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한 우리 아기,  애착 인형 '멍멍이'를 친구가 아닌 '부하'라고 하는 우리 아기.

우리 아기는 과연 어떤 말을 가장 먼저 적을까?


아가야, 아빠와 멍멍이는 너의 영원한 친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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