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설계하는 UX 디자이너 이야기
참고:
- 2021~2022년 프로젝트를 회고한 글입니다.
- 26년 1월에 발행한 글입니다.
- 개인의 인사이트를 회고하는 글입니다.
-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공유하지 않습니다.
완성차 업체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포티투닷에 합류하기 전, 나는 현대자동차에서 제네시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UX 설계를 담당했다. 현재 도로를 누비는 G80, GV70, GV80 1세대 모델의 UX 설계를 맡아 초기 컨셉 기획부터 양산, 검증, 고도화 단계까지 차종 개발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 차량 개발의 모든 사이클을 경험하고 나니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그 갈증을 따라 2021년 하반기,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포티투닷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포티투닷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나의 자동차 도메인 커리어는 '자율주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와 모빌리티 서비스의 결합
국내에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연구하는 회사가 많다. 모빌리티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도 많다. 그러나 2021년 당시에는 이 두 영역을 모두 개발하는 회사는 드물었다. 포티투닷은 차량 개발부터 운영 플랫폼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보기 드문 회사였다. 이러한 통합 전략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2021년 11월, 서울시 자율주행 유상운송면서 1호를 취득하며 플랫폼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직접 만든 차량으로 도심형 유상운송 서비스를 실현할 토대가 되었고, 이듬해인 2022년 2월 상암과 청계천에서 본격적인 자율주행 호출 서비스를 선보이는 마중물이 되었다.
(관련 기사-포티투닷, 서울 상암서 '자율주행차 호출' 서비스 시작/2021-11-29)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서비스를
설계한다는 것
포티투닷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전석과 후석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된다. 여기에 차량 호출 서비스인 'TAP!'이 더해진다. 나는 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모바일 앱의 UX 설계를 담당했다. 자율주행 서비스 플랫폼의 밑그림을 그린 셈이다. 완성차 업체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프로젝트였다. 서비스 기획자 또는 UX 디자이너 중에 이러한 서비스를 경험해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흥미로운 점은, 2022년 2월 서비스 오픈 전까지 이러한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해 본 사용자가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UX 디자이너로서 가슴 설레는 도전이었다.
자동차가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서비스를 설계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새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새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직관과 가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일반 자동차가 아니라 자율주행 자동차였기 때문이다. UX 기획자로서 겪은 가장 큰 허들은 '판단의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설계의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실무자부터 자율주행 서비스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국내에는 전례가 없었다. 해외 사례도 베타 서비스 수준에 불과했다. 레퍼런스가 없는 상태에서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따랐다.
레퍼런스가 없다는 건 이전 사용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전 사용자가 없다는 것은 데이터의 부재를 의미한다. 사용성을 검증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서비스 개발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데, 이를 중재하고 정리할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데이터가 없으니 타겟 사용자를 정의하기도 어려웠다.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타겟 사용자를 선정하고 경험의 범위를 좁혀야 했다. 비즈니스 전략에 따라 가상의 타겟을 정했지만, 실제 운영 전까지는 검증할 길이 없었다.
관성을 버리고 하나씩 해결해 보자
문제를 발견했으면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UX 디자이너의 본능 아닌가. 상황을 받아들이고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잘못된 가설이 없었는지 따져보고 주어진 재료를 활용하여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박혀 있는 사용자의 기준을 바꾸었다. 자가용은 운전자(Driver) 중심의 경험을 설계한다. 하지만 자율주행 서비스는 승객(Passenger) 중심의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사용자의 정의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운전자는 차량을 제어하는 능동적 주체다. 반면 자율주행 승객은 차를 호출하고 요금을 지불하는 서비스 이용 고객이다. 운전자가 사용하는 IVI 시스템과 승객이 사용하는 IVI 시스템은 완전히 다른 플랫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규 서비스 설계자가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다.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 국민을 타겟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차를 처음 타보는 사용자가 있다.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유입조차 불가능하다. 성공 시나리오에 담긴 '전형적인 사용자'는 제외했다. 대신, 의심이 가득하고 배경지식이 없는 '아기 사용자'를 타겟으로 삼았다. 초기 사용자에 집중하니 MVP(최소 기능 제품)가 명확해졌다. 덕분에 플랫폼은 가벼워졌고 의사결정은 빨라졌다.
참고할 서비스도 운영 경험도 없으니 데이터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직접 사용자가 되어 정성 데이터를 수집하기로 했다. 테스터를 모집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데이터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머릿속으로만 그리지 않았다.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서비스 이용자가 되었다. 때로는 관찰자가 되어 사용자가 말하지 못하는 불편을 발견했다. 데이터의 모수는 적을지 몰라도 데이터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수많은 플랫폼을 설계해 보았지만 자율주행 서비스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단순히 몸이 힘든(Hard) 것보다 난도가 높은(Difficult) 느낌이었다. 목표 의식이 뚜렷한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서비스 런칭이 가능했다.
자율주행, 일상이 되다: 런칭 그 이후의 기록
이러한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TAP!' 서비스는 2022년 2월, 서울 상암과 청계천에서 마침내 시민들과 만났다. 반응은 뜨거웠다. 생소한 자율주행차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곧 스마트폰 앱으로 차를 불러 일상의 이동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런칭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재이용률을 기록하며, 자율주행이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닌 '체감 가능한 서비스'임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큰 의미는 국내 최초로 도심형 유상운송 서비스를 실현하며 자율주행 생태계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기술력을 과시하는 실험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도심 도로 위에서 결제와 배차, 승하차를 아우르는 '완전한 서비스 시나리오'를 작동시켰다. 이는 자율주행 업계에 기술 고도화만큼이나 사용자 경험(UX) 설계가 중요하다는 강력한 화두를 던진 계기가 되었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일은 발자국 없는 눈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발을 내디디는 매 순간이 조심스럽다.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도 많다. 하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내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매우 짜릿하다. 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자율주행 모빌리티의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이미 소중한 첫 발을 뗐다.
그러나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2022년 8월, 포티투닷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며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룹의 핵심 자율주행 조직으로서 사업 포지션을 새롭게 재편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23년 상반기, 자율주행 플랫폼 운영 규모를 축소하고 사업권 일부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그려온 독자적인 모빌리티 서비스는 여기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남긴 발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뜨거웠던 경험들이 더 큰 결실로 맺어질 날을 기대한다.
참고:
- 이 글은 2021~2022년 프로젝트를 회고한 글이며 2026년 1월에 발행하였습니다.
- 개인의 인사이트를 회고하는 글입니다.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공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