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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Oct 08. 2021

9월: 부드럽게 다시, 시작

2021년 4분기가 시작되었다. 


충동적인 소비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충동'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시작되는가? 

물론 끝은 알고 있다.


이유 없는 박탈감: "아니 내 월급 어디갔지?" 

소스라치게 놀람: "아니 이걸 내가 다 썼다고?" "그게 이렇게 비쌌나?" "다 합하면 이렇게 많은거야?" 


네이버 페이로 10만원 현금 환급해준다는 이야기에 또 솔깃해서.. 삼성 네이버페이 카드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카드를 받던 날 나도 모르게 귀가 빨개졌다. 아무도 나의 과소비 성향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회사에선), 신용카드를 만들다니... 


이제 난 예산도 있고, 비상금도 있고, 적금도 하고 있으니까 신용카드 관리 잘 할 수 있어! 라고 다독이며, 쓰기 시작했고, 한 번 터진 수도꼭지는 잠기지 않았다. 결국 저수지에 넣어둔 비상금까지 다 끌어와야 했다. 


신용카드를 쓰면 데이터가 문자로 날아오고, 앱에서 분석을 해주니까 가계부를 쓰는데 게을러진다. 가계부를 안쓰고, 점점 금액이 늘어날 수록 문자의 '총액'을 흐린눈으로 보게 되고, 정말 무섭게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이상한 반발심이 치솟는다. 


어느 날은 눈물이 났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대출도 갚고, 적금도 시작하고, 생애 첫 적금 달성한 돈으로 비상금까지 만들었는데 또 신용카드를 써서 허물었네. 나는 영영 위로 올라갈 수 없나봐. 


어느 날은 자랑스러웠다. 어쨌든 대출이 있던 작년이랑은 다르잖아? 연체된 것도 아니고, 리볼빙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현금 서비스를 쓰는 것도 아니잖아? 그 때랑은 달라. 


일단 신용카드 선결제로 전체 금액을 정리하는 일을 즉시 실행했다. 8월, 9월 명세서를 엑셀로 다운 받고 가계부 항목을 기입하고, 베스트 & 워스트 소비를 표시했다. 항목이 기억안나는 것은 보통 '네이버 페이'로 샀던 것들이라 날짜와 금액을 대조하면 찾아낼 수 있었다. (월간 가계부 정산 일기를 쓰는 지금도 아직 이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나의 삐죽삐죽하고 흐물거리는 마음을 들여다 봤다. 

"그 물건이 가지고 싶었어?" 

"그게 하고 싶었어?" 


결국 10월의 내가, 1년 동안 모은 비상금으로 해줬다. 박탈감, 허탈감도 느껴진다. 신용카드를 쓰고, 계획에 없는 소비를 따라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하루에 5만 가지 생각을 한다는게 맞다. 하루에도 새롭게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오만가지 떠오른다. 내가 떠올린 것도 있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 & 부추김 당한 것도 있다. 자극을 받는다.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그리고 그 자극에 반응하면 충동소비가 된다. 


엎질러진 물을 한번.. 막아보자.. 

나의 미욱함을 너무 혼을 냈더니, 스스로 잘못한 걸 알고 있는 고영처럼 주늑들어 있었다. 월간 가계부 모임 동료들의 말에도 쉽게 상처 받았다. 가계부를 쓰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실수만 매번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게 다짐하고, 그렇게 이제는 다른 사람 되었다고 동네방네 소문냈는데.. 나는 여전히 나여서. 


부자로 ‘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사람은 모두 부자가 되는 데 뛰어났으나 부자로 ‘남는 데’는 서툴렀다. ‘부자’라는 표현이 스스로에게 적합하지 않다 해도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다음의 교훈을 남긴다. 돈을 버는 것은 버는 것이다. 이를 유지하는 것은 별개다.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적금을 유지하고, 1년 성공한 것도 나에게는 큰 발걸음이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다. 

돈을 모으는 건 모으는 거지만, 유지하는 것, 불리는 것, 부자로 '남는' 것은 다르다. 

부자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막연하게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매번 반짝 소비를 줄이고 투자 상품을 좀 알아보는 것 말고 진짜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계획을 세워본 적은 없다. 아직도 부자가 되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못하고, 부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미래에 대한 공포 때문에 뭐라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말고, 진짜 고민해본적이 없다. 


공포감에 의해서 발작적으로, 일시적으로 남들 하는 짓을 모방하는게 아니라 진짜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싶다. 이런 저런 자극과 충동에 흘러다니지 않고, 내 삶과 돈에 대한 철학이 있어서 내 방향으로 물길을 내며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가고 싶다. 충동 소비도 내 삶에 대한 어떤 기저 욕망들이 튀어나오는 네거티브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그 실루엣을 따라 점선을 잇다 보면 알맹이가 나올까?  



Best 소비 3 >>>

1. 움직씨 출판사, 에디시옹 장물랭 104,800원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부스를 개미햝기처럼 하나 하나 더듬으면서 본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문장 자판기에서 오드리 로드의 <블랙 유니콘>이 딱! 나온 것. 움직씨 출판사 책 중에서 아직 없는거 다 구입하고, 친구들에게도 영업했다. 에디시옹 장물랭도 다 있어서 친구 책 한 권 사주고, 없는 책 한 권 샀다. 응원하는 출판사들이 많았는데 직접 편집자님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있는 책 다 쓸어가니까 괜히 최애 출판사 기세워주는 것 같고 신났다. 헤헤 


2. 제주항공 편도 15,600원 

토요일 오후 5시 40분 경,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제주에서 한 달살기 하고 있는 친구가 보고 싶어서 일정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오늘 오지 그랬어' 이야기를 듣고 후회했다. '그냥 오늘 갈껄..' 

그러다가 '지금이라도 가자' 번뜩 생각이 들어서, 비행기표를 찾아보니 2시간 후에 출발 하는 제주행 비행기표가 15,600원이었다. 만 오천원짜리 용기. 저녁에 도착해서 제주도의 칠흙 같은 밤, 동네에 있는 유일한 편의점 앞에서 더위사냥을 반반 나눠먹었다. 다음날은 비가 보슬보슬 왔고, 모든 음식이 맛있고 풍경이 달았다. 


3. 가다실 백신 210,000원 

2차를 드디어 맞았다. 20대에 1차만 4번 맞았다. 매번 회사나 해외 출국 일정 때문에 놓치고, 또 학생 때는 백신비용으로 받은 용돈을 다른데 써버리느라고 놓쳤다. 비싸지만,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백신을 맞아서 다행이다. 필요로하는 의료 지출을 감당할 수 있어서 기쁘다. 백신이 더 싸지고, 남녀모두 '당연히' 맞아야 하는 날까지 공공 캠페인도 많아지면 좋겠다. 


Worst 소비 3 >>>

1. 최고심 팝업 스토어 69,000원 

최고심 너무 사랑합니다.. 근데 하나를 못고르는 병이 또 걸려서 비슷한거 종류별로 다 샀더니, 결국은 동생 (내 모든 충동 소비의 최대 수혜자)이 가져갔다. 진짜 옆에 두고 보고, 계속 쓸 수 있는 것 하나만 골랐다면 가격은 1/3이었을거고 만족도는 훨씬 더 높았을 거다. 


2. 제주도 기념품샵 69,500원 

상당히 만물가게스러웠고 내 스타일이긴 했지만.. 계획없이 이것저것 사버렸다. 그리고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 2만 5천원 정도 지출을 했는데.. 찜찜했다. 선물해야 할 사람이긴 한데 좀 그랬다. 집에 재료도 다 있고 직접 만들 수도 있는데 은 발찌를 샀다. 사실 한 달간 잘하고 다녀서 2만원이 크게 아까운건 아니었지만, 총 금액이 5만원 이상이라 깜짝 놀랬다. 


3. 약국 5,000원 

집에 타이레놀 많은 걸 아는데도 한 통 더 샀다. 백신 맞고나서 혹시나 싶어서 쟁여놓고 싶었나보다. 유통기한이 길어서 사놓으면 보관할 수 있긴 한데, 무시로 올리브영이나 약국에 가서 1만원 이하로 쓰는 돈들이 꽤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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