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킴] 평두메습지 탐사 후기와 리와일딩
비는 갑자기 내린다.
여름을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은 싫어해서 장마가 오기 전부터 긴장하고 대비를 단단히 해두는 데 올해는 소용이 없었다. 현장학습으로 평두메습지를 방문하기 위해 무등산 국립공원으로 내려가는 주말도 마찬가지로 계획하기 어려웠다. 지난 7월 나는 '와일드우먼'이라는 이름으로 국립공원 탄소중립 서포터즈에 선정되어, 우먼스베이스캠프에서 만난 친구 경아, 쑴, 가영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국립공원의 탄소중립을 위한 활동을 경험해 보고 홍보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한다. 첫 번째 공식 행사로 생태탐방원에서 워크숍을 듣고, 현장도 직접 방문해 볼 예정이었다.
나는 광주로 떠나면서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라 조금씩 다 챙겼다. 차에 우산, 반팔/긴팔 옷들을 챙겼다. 요즘 일기예보는 소용이 없으니까, 변동폭에 대비를 해야 돼. 자연에서 돌발상황은 달갑지 않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워크숍 기간 내내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아주 쨍쨍한 날씨였는데 난데없이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온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덥다가, 돌아가는 길이 위태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데 언제 그칠지, 다시 올지 모른다.
'기후위기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 보실 분?'
기후위기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 워크숍에서 다섯 팀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키워드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진 뒤 국립공원의 역할과 생물다양성에 대한 강의에서 들은 질문이다. 기후와 지구 환경은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위기가 된 것은 그 변화가 생물종이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불안정한 환경이 반복되면서 기존의 생존전략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유효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겪었던 기록적인 장마는 올해 반복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먹었던 과일이 이제 다른 곳에서 자란다. 노후에는 한적한 곳에서 자연과 가까이하며 살아야지. 가능할까? 아이들을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키우면서 정원을 가꿔야지. 가능할까? 기후 환경이 변하면서 먹거리도 변하고, 살기 좋은 곳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현재의 불편함을 넘어서, 나에게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나에게 자연스러웠던 풍경이 사라지는 만큼, 나도 사라지고 있다. 야생의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빙하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 풍경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평두메 습지로 올라가는 길에 우리는 왼쪽과 오른쪽 편을 나누어 식물 분류학을 전공하신 황 교수님과 김연경 선생님과 함께 식생 조사를 위한 작업을 했다. 새로운 식물 종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는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던 장소의 위도와 경도를 GPS 어플로 데이터를 만든다. 식물의 이름을 기억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여름 풀'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 신기했다. 도착한 습지는 식생조사를 위한 구역 표시가 곳곳이 라벨링 되어 있는 초록 무더기였다. 이름이 다 다른 고사리(그렇다 고사리가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박사님은 고사리 전문가였다...), 버드나무, 달부리풀, 쇠뜨기, 망초, 올챙이골, 물달개비, 산초나무, 자귀나무, 오이풀, 쇠머루, 물푸레나무, 알록제비꽃, 상산... 그리고 한국의 멸종위기종인 낙지다리까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하며 습지가 있는 어귀에 들어섰는데 공사판이라 당황했다. 몇 년 전 폭우로 쓸려내려 간 습지를 복원했다는 담당 직원분의 강의에서 친환경적 공법과 조감도, 비포/애프터 사진까지 봤는 데 아직 공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속적으로 복원을 계속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을 토지 매수하여 서식지 복원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수생식물로 빼곡했었는데 공사 과정에서 타격을 받았지만, 일 년도 안돼서 다시 자라난다고 한다. 계단식으로 식생벽을 만들어주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공사 현장은 황량했다. 흙탕물에 풀 몇 포기가 듬성듬성 나있는 풍경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2024년 5월 람사르 습지에 지정된 평두메 습지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논이 자연스럽게 천이되어 습지가 된 것을 무등산이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서 전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자연보호 구역이다. 그간 식생을 조사하고 생태계를 복원한 국립공원공단의 노력으로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인증을 받아 제도적인 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복원 계획, 방법, 인증서를 보여주시던 담당자분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나까지 벅차올랐다. 모든 공사와 개입이 나쁜 것이 아니구나.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하는 것이 자연 보전이 아니라 '리와일딩'이라고 하는 재야생화 개념을 현장에서 목격하기 위해서 이 장소에 왔구나. 기후위기 시대에는 무엇이 아름답게 여겨지는지 렌즈를 바꿔야 한다. 습지에 이상한 조형물이 생기지 않고 이 아름다움이 지속되길 간절히 바란다.
람사르 협약은 자연자원과 서식지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서 60년대 급격하게 멸종하는 물새를 보호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환경 보호에 관한 첫 범지구적 협약이다. 습지의 기준 중 중요한 민물에도 6M를 유지할 것이라는 조건이 물새가 사냥할 때 바닥까지 닿을 수 있는 거리여서 그렇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제 평두메습지(Pyeongdumae Wetland)는 우리나라 21번째 람사르습지로 등재되었고, 국제적인 협약기구에서 제시한 습지 자원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을 위한 기본방향을 매뉴얼을 따르고 모니터링될 것이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황급히 습지를 떠나는 데 와일드우먼 일행은 다음 차를 기다리느라 비 오는 나무 밑에서 습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비가 오자마자 개구리가 눈에 띄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두메습지는 분간할 수 없게 주변의 숲과 엉켜있었고, 쏟아져내리는 비를 맞으며 많은 식물들이 고요하게 폭발음을 내고 있었다. 땅에 물만 고이면 벼를 심는다는 농업 작물 전공자(!) 경아의 말 대로 논이었던 땅. 논도 아니고 호수도 아니고 묻도 아닌 공간에 야생동물들이 돌아왔다. 리와일딩은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을 수정하고 멈추는 경계를 긋는 데서 시작하고, '자연이 운영되는 순리대로 가게 하는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국립공원공단은 생물 다양성과 기후를 보호하기 위해 토지를 보호하고 복원하도록 돕는다는 미션뿐만 아니라, 보호구역에서 야생 동식물 개체군 모니터링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 이에 따른 지역 재조림, 토착종 재도입과 같은 복원 프로그램을 통해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농업, 임업, 생태 관광과 같은 지역 사회에 혜택을 제공하는 관리도 한다. 설악산에서 주취자 단속하고 계도하는 모습, 등산객 구조하는 모습이 하이커로서 내가 접했던 국립공원공단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정표 하나, 주변 마을 주민과의 소통 하나,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이으려는 노력, 그냥 시민으로서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 하나들도 다 모여있는 현장이었다. 해양을 전공하셨다는 국립공원공단 과장님은 이 길을 얼마나 많이 다녀보셨는지 비가 쏟아지는 좁은 길을 능숙하고 빠르게 운전해서 내려갔다. 역시 파크 레인저는 모하비지... 무등산 국립공원의 생태보호구역 복원계획은 주변의 땅을 더 사들이고, 습지를 보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곳은 출현하는 생물들을 보아주고, 지켜주고, 지속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인근 담양에서 무등산 일대에서 채취한 산약초를 공부하고 요리하는 연구가 선생님의 '약초밥상'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하루종일 이름을 익혔던 약초로 술도 빚고, 장아찌도 만들고, 비빔밥도 기가 막히게 만들고, 기침하는 나를 위해 귀한 머위 조청도 내주셨다. 내가 사는 땅에서 나는 식물들을 공부하고, 내가 먹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의 힘에 대해서도 배웠다. 토양을 재생하고 생물다양성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우리도 살릴 수 있다. 리와일딩과 관련된 다큐 <Regenerating Life>를 슬쩍 틀려고 했던 나의 계략은 실패했고... 대신 수다를 많이 떨었다. 킴킴서재에서 했던 <0원으로 사는 삶> 북클럽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침이었다. (갑자기 쓰러져서 잠듬... 감기약의 여파)
토요일에는 국립공원과 환경부에서 지정한 명품마을(이름은 그렇지만 진짜 명품이다) 평촌마을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평두메습지에서 관찰한 식물과 동물을 세밀화로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비 오기 직전의 평두메습지 풍경을 색연필로 그렸다. 초록색 케이크처럼 보였던 풍경은 그리려고 사진을 당겨 보면 볼수록 무등산 산그리메, 숲, 버드나무 군락, 습지에서 나고 자라는 풀, 보이진 않지만 여기에 있는 수많은 야생의 생명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레이어로 보였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야생인 그들의 막중한 존재감을 평면 위에 옮기려고 노력하였지만 장렬히 실패하였고... 다만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평두메 습지를 그렸다는데 만족한다 하겠다.
평두메습지는 영산강의 상류이고, 모든 변화는 상류에서 시작된다. 평두메습지에서 봤던 공사현장에 대한 이질감을 이해하고, 국립공원 현장 워크숍에서 받았던 자료들을 추가적으로 공부하면서 자연보호구역, 국립공원의 역사를 '리와일딩'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국내의 리와일딩 사례를 살펴보다가.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머리재의 버려진 목장을 매입하여 성공적으로 복원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무등산 공유화 운동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이 난개발로 인해 나날이 훼손되자 지역에서는 무등산살리기운동,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등을 창립하여 활동했다. 그러다 1991년 대안운동으로서 무등산 시민 땅 한 평 갖기 1천원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2000년에는 무등산공유화재단을 발족했다. 이들은 시민들의 기부, 토지 기증을 통해 무등산의 자연유산, 문화유산을 사회공익자본으로 전환시키는 운동인 무등산 공유화 운동을 진행 중이다. 현재 16만 평 이상의 공유지를 확보하였다. - 야생신탁 사전조사 보고서 중
민간의 생태보전을 위한 토지보유 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리와일딩' 개념에 더욱 매료되었다. 급기야 나는 생일 기념으로 땅을 샀다.
가영, 쑴, 경아는 멋진 친구들이다. 진정한 와일드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는 비 내리는 하산길 과장님이 일러주신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곳으로 가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전날에 저녁 10시까지 광주에서 비건 중화요리도 먹고, 클라이밍도 갔다가, 미친 아이스크림을 먹고, 웃긴 인생 네 컷을 찍고... 나만 체력 소진으로 차에서 자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금방 돌아왔다. 새벽이슬과 온갖 가시풀에 쓸려서 벌써 낡았지만(?) 환하게. 그리고 무등산 온천에서 목욕했다. 역시 여자들끼리 등산하면 온천이제~ 가서는 논다고 정신 없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을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고 싶다. 가을에 참 예쁘다는데. 맛있는 것도 많을 테고.
세상에 기대할 풍경, 다음에 다시 오면 더 좋아져 있을 풍경이 얼마나 될까?
가을에 무등산 같이 갈 와일드우먼?
킴킴 씀
2024.08.22
참고자료
국립공원공단 탄소중립 서포터즈 3기 OT 자료
국립공원공단 탄소중립 서포터즈 교재
국제보호지역, UNESCO (간행물 PDF)
람사르협약, 국립생태원 홈페이지 (URL 2024/08/21)
습지주의자, 김산하, 2019
플래닛03 인터뷰, 특별인터뷰 |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박사ㅣ리와일딩(Rewilding)을 하는 이유
킴킴의 각종 추천
1. <Regenerating Life> 다큐 트레일러
문제는 탄소 하나가 아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 할 수 있는가? 물의 순환으로 생각 전환하기. 토양이 생명의 기본적인 토대라는 것, 다양한 농업혁명과 과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한다. 탄소 잡는 기계(..ㅋㅋ)에 현혹되지 않도록 꼭 공부 차원에서 보길 바란다. 사람들이 환경 영화계의 <듄>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한국어 자막이 있다.
2. 야생신탁, 생명다양성재단 (신청링크, 사전조사 보고서)
곧 생일이라 땅 샀다. 리와일딩에 관심 있다면 직접 참여할 수 있다. 한 그루에 55,000원.
3. <Wild Life>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
땅을 사서 칠레에 국립공원으로 기증한 노스페이스 창업자의 이야기. 이본 쉬나드, 그의 아내 크리스의 이야기, 생전 인터뷰 영상들이다. 꿈은 이렇게 크게 꿔야지. 텐트가 우리 서식지다. 자연이 파괴되면 우리도 파괴된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4. 하반기 우프 모집, 우프코리아 블로그
우퍼 경험자 쑴의 초대로 11월 초 강릉에 감따고 곶감 만들기 하러 1박 2일 간다! 정원가꾸기, 꽃을 대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기대된다. 같이 갈 사람 빨리 신청해~
5. 평촌마을 반디민박 (예약전화)
정말 깔끔하고 마을 노인정 위층이다. 폐축사를 개조해서 만든 커뮤니티 키친은 20명 이상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가동된다. 미친 고추튀각, 가지튀김, 각종 산야채 나물이 있다... 꼭 20명 다시 모아서 가기로 약속했고, 화가 선생님이 마당에서 캠핑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다. 같이 갈 와일드우먼?
6. 약초밥상, 유튜브
엄마랑 다시 가고 싶은 곳. 음식으로 병이 낫는다. 진짜 그런 것 같다. 비건 친구들에게도 강추. 비빔밥은 꼭 최금옥 선생님께 비벼달라고 하시게.. 그리고 김치가 진짜 맛있는데 그때는 없어서 못 먹는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