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Jul 26. 2016

상담자의 그늘

상담자, 상담 업계에 대한 내부 비판

상담실에 한 시간 앉아있는 비용은 대게 모범택시에 한 시간 앉아있는 비용보다 비싸다. 상담실에도 미터기가 달려있었다면 많은 내담자들은 질주하는 미터기를 보며 상담을 무지하게 치열하게 받거나 아니면 중간에 내리겠다고 뛰쳐나갔으리라.


(물론 상담실의 운영 비용은 차값보다 비싸고, 상담자는 상담자가 되기 위해 - 취업이 늦어지는 기회비용을 포함해 - 중형택시 몇 대값을 치른다)


안타깝게도 많은 내담자들이 비싼 택시값을 치르고도 목적지까지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담자 요인인 경우도 많지만 상담자나 상담센터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1. 유명 상담가의 허와 실

한 번은 나름 자기만의 학파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소위 대가라고 하는 분의 강의를 듣다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자기는 상담을 길게 끌지 않고 몇 회만에  핵심문제를 다 짚어내어 해결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실제 성공 사례를 줄줄 이야기한다. 


사실 단기상담 기법은 내담자의 경제적, 시간적 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상담자들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선전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경계심이 생겼다. 그는 과연 단기간에 문제를 착착 해결 해내는 실력자인가? 


상담자가 유명세를 타게 되면 그런 유명 상담자를 좋아하는 - 절실하고 피 암시성 높은 내담자들만 더 꼬이게 되고, 강력한 권위자의 카리스마에 홀려 마치 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또 자의든 아니든 상담자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유형의 내담자만 가려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널리 알려진 그 상담자의 기법을 선호하는 사람만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자는 유명해질수록 상담이 더 잘 되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바로 착시현상이다. 반면 유명하다고 해서 비싼 돈을 내고 상담을 받았는데 소문만큼 효과가 없다는 내담자도 늘어난다. 


유명 사이비 교주는 기법이 아닌 카리스마로 신도를 늘려간다. 유명 외과의사는 높은 수술 성공률을 유지하기 위해 치명적인 환자는 피해 간다. 그러니 너무 유명 상담자만 찾을 필요가 없다. 


상담가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중 하나가 - 초보 상담자가 의외로 상담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는데, 대학원과 기초 수련과정을 막 끝내고 초보 상담자가 되었을 때에는 기법적으로는 미숙하나 내담자의 문제가 정말 내 문제인 것처럼 고민하고 고민했다. 당연히 그런 진심이 내담자에게도 전해지지 않겠는가? 


(사실 개인적 경험을 예로 든 것은 조심스럽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권위자로 행세할 수 있을 만큼 상담계가 어수룩하진 않고, 대부분의 중견 상담자들은 겸손하고 솔직하고, 내담자에 대한 진심이 깊다)


2. 프랜차이즈 상담센터

몇 년 전부터 상담 업계에도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사실 상담가들은 경영이나 돈문제에는 거의 초등학생 수준으로 미숙하고 순진한 편이라 내 상담 실력이 좋으면 알아서 내담자가 늘어나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가 아닌 경영학 전공자가 상담 센터를 만들어 심리학자를 소장으로 앉히고는 프랜차이즈 마케팅을 시작했다. 상담센터 홈페이지는 엄청 화려하며, 연예인의 후기까지 올라와 있고, 강남본점을 필두로 전국에 많은 지점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센터가 수준이 있는 센터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프랜차이즈 센터니까 중간은 하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식당을 고를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중간은 하겠지!


문제는 그런 프랜차이즈 센터의 인력 수준이 상당히 낮다는 데 있다. 일반 상담 센터는 소속된 상담자의 실력 그 자체를 가지고 경쟁을 하지만, 프랜차이즈 상담센터는 광고, 홍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지고 승부를 본다. 상담자를 고용할 때 상담실력보다는 쉽게 보이는 학벌, 그럴듯한 자격증, 심지어 상담자의 외모 등을 더 따지게 된다. 상담자에 대한 처우도 열악해서 초심 상담자가 아니고는 만족하지 못할 페이만을 주고, 그것도 몇 회기 이상 내담자를 유지해야 페이가 올라가는 구조를 갖는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욕구와 상관없이 상담을 오래 끌어야 돈을 벌게 된다. 재주는 상담자가 부리고 돈은 경영자가 가져간다. 


일찍이 제대로 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런 프랜차이즈 센터에 등을 돌렸고,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진 센터에서는 초심 상담자 위주로 센터를 갖출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업성 센터에 실컷 실망해버리고 난 뒤 다시는 상담 센터를 찾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3. 수많은 상담 자격증의 난립

상담을 받으려고 알아본 사람들은 상담과 관련한 자격증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입생 감소로 고생하는 대학교마다 상담 관련 학과를 만든다. 사이버대에는 상담학과와 사회복지학과가 필수가 됐다. 이뿐 아니라 정규대학원 과정에 못 미치는 특수대학원 과정, 평생교육원, 사설 워크숍 등에서도 돈만 내면 딸 수 있는 상담 자격증을 남발하고 있다. 


보통은 심리학과나 관련 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이후에도 3년 내외의 소정의 수련 과정을 열심히 해야 - 풋풋하지만 홀로서기를 해볼 수 있는 전문가 자격증을 따게 된다. 이것도 이름만 전문가지 사실은 5~10년 동안 더 높은 전문가에게 지도를 꼼꼼히 받아야 비로소 누구를 지도할 수도 있는 전문가가 된다. 


그러나 속성으로 만들어진 상담자들은 그러한 배움의 과정을 소홀히 하기도 하고, 때로는 열정이 있어도 수준 있는 전문가를 찾지 못해 영양가 없는 워크숍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4. 총체적 난국

굳이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인생 2막의 보람을 위해 뒤늦게 상담을 배운 중년의 인력들이 많이 배출되다 보니 상담자들의 인건비는 더 낮아졌고, 젊고 지적 소양을 가진 상담자들은 상담을 해서 먹고 살기보다는 그런 중년의 인력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 강사가 되어 먹고 산다. 하루 종일 상담을 하는 것보다 기초 심리검사 강의를 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더 쉽게 벌 수 있다. 


뒤늦게 상담을 배운 분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뒤늦게 배웠지만 성실하고 뒤늦게 발견한 소질도 있어서 상담을 누구 못지않게 잘 하시는 분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단, 그런 잘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뒤늦게 배우시긴 했어도 교육과 수련과정을 충실하게 했다는 점이다. 소질이 있어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이상한 상담자가 되고 만다.


한편 유명 대학을 나온 유능한 상담 인재들은 야전 필드에서 자신만의 실력을 갈고닦기보다는 적당히 경험을 쌓은 뒤 지방대나 사이버대학교라도 '교수'자리를 꽤 찰 생각만 하고 있다. 개업하여 나름의 길을 멋지게 간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몇 년 있다가 센터를 접고 지방대나 사이버대의 교수로 들어가 버리는 일을 수 없이 봐왔다. 나 같아도 힘들게 센터 운영하느니 - 교수할 수만 있으면 교수하겠다. 다만 서글픈 일이다. 


교수가 되면 어쩌면 자기의 상담이론을 펼치기 더 쉬울 수 있겠다. 어느 대학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워크숍에는 사람이 몰리고, 학회의 높은 자리도 할 수 있으며, 덮어놓고 우러러봐주는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다. 


우리나라 상담학회는 크게 심리학과가 주축이 된 상담심리학회와 교육학과 및 관련 학과로 이루어진 상담학회가 있다. 상담 관련 학회가 그렇게 두 개로 갈린 데에는 '심리학과'와 '교육학과'의 알력 다툼도 들어있다. 한쪽은 '심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담을 하냐고 하고, 다른 한쪽은 상담에 심리만이 전부냐고 한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같은 분야도 독일에서 유학한 A 교수님이 학회를 만들면, 미국에서 유학한 B교수님도 자기 나름의 학회를 만들어 제자를 거느린다. 치료 이론과 배경이 다르니 접근법이 다를 수는 있겠으나 이렇게 서로 다른 분파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며 검증하고 소통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배척하기만 하기 때문에 막상 상담자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누굴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 그러면 실력 있는 상담자는 누구인가?


'강의'로 먹고 사는 상담자가 아닌, '상담' 그 자체만으로 일하고 있는 상담자. 

어떤 센터의 유명세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이름만을 가지고 10년 이상 개업을 유지하는 상담자. 

상담을 해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 스스로도 상담이나 슈퍼비전을 꾸준히 받고 있는 상담자(때로 중견 상담자들은 비슷한 연차의 사람들끼리 자조 그룹을 형성해 서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자신만의 기술이나 접근법을 너무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적이고 검증된 상담 기법을 사용하는 상담자.

"나만 믿고 따라와"가 아니라 시행착오나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 자신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 다른 더 좋은 상담자로 즉시 연결시켜줄 의향이 있는 상담자. 

가급적 공인된 학과를 졸업하고, 충분한 시간동안 밀도깊은 수련을 받았으며, 쓸데없는자격증을 잔뜩 따기보다 공인된 학회의 자격증을 딴 상담자(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의 1급 수준의 자격)

     


내담자는 상담자, 상담소를 선택할 때 경각심과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만나 상담자의 전공, 수련 경력, 이론적 배경 등을 묻는 것은 권리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상담자일수록 켕기는 게 많다. 


상담자라고 하면 영화에서처럼 내담자를 위해 따뜻한 마음이 넘치는 선생님 같아 보이지만 상담 업계의 속은 이렇게 어두운 면도 많다. 안타깝지만 현실이고, 다 언급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상담자와 상담에 실망한 내담자들도 많은데 덮어놓고 상담은 다 쓸모없어~라고 생각하기보다 상담자를 선택함에 있어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판적인 글을 쓰다 보니 부정적 부분을 확대해서 쓰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 개인의 견해가 절대적이므로 단번에 믿기보다 반대되는 또 다른 많은 의견과 시선을 함께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전 04화 그게 괜찮지가 않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