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Jul 21. 2016

그게 괜찮지가 않아

상담실 이야기

내가 초보 상담자였을 때, 내담자가 내게 해준 한 마디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상담시간에 내담자가 불쑥 말했다.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다보면 제 문제가 자꾸 사소하게 느껴져요"


나는 초보였으나 그래도 그말의 뉘앙스는 바로 알아챌 정도는 되었기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내가 상담을 엄청 잘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생님이 자꾸 괜찮아 괜찮아 잘 될꺼야라고 하니까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미련하게 계속 힘들어하는 바보가 된 느낌이 들어요"라는 말이고,


바꿔 말하면 괜찮다는 말보다는 그렇구나하는 공감을 더 받고싶다는 말이었다.


내딴에는 내담자를 격려해준답시고 괜찮아 잘될꺼야를 남발했던 것인데 그 말이 내담자에겐 니가 겪고 있는 일은 사실은 별 일 아니야로 들렸던 것이다.


이 얼마나 미안하고 무안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나는 내 입장만 생각했지 내담자가 공감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공감이 빠진 격려만 남발하고 있었음을 내담자가 먼저 느꼈다. 상담자보다 민감성이 더 좋은 내담자였다.


내담자의 그 말 한마디는 교수나 슈퍼바이저의 어떤 지적이나 질책보다 더 아프고 쓰렸다. 그리고 내가 오히려 슈퍼비전 비용이라도 줘야할 것 같은 고마운 지적이었다.


내담자의 그런 말에 조금 정신이 든 나는 어떤 맥락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를 좀 더 내담자와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상담자의 괜찮아는 격려의 표현이지 내담자의 지금 문제가 사소해서는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불편한 자기 마음을 잘 알아채고 용감하게 말로도 꺼낸 내담자를 칭찬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상담자가 내담자의 고통에 머물며 충분히 공감해주기 보다는 섣불리 격려만 남발했음에 미안하다는 말도 건냈다.


이후 나는 상담할 때 괜찮아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당신 문제는(고통은) 참 괜찮지가 않군요."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럴 때 내담자는 자신이 오랬동안  느껴왔던 고통이 엄살이나 꾀병이 아니라 진짜 아파할만한 것이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진짜 아픈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상담에서 뿐 아니라 괜찮아를 남발하는 책이나 글, 또는 주변의 유난히 긍정스럽기만한 사람들을 겪을 때에도 난 종종 되뇌인다.


내가 아프면 안 괜찮은거야

세상이 괜찮아도

당신이 아프면 괜찮지가 않은거야

이전 03화 내 감정을 보살핀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