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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Jun 29. 2016

말을 해야 알지

감정이란 속살 드러내기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바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나는 거북했다.


시원한 비키니 수영복 입은 요즘 아가씨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의 시선처럼 제 속살을 그렇게 쉽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불편하다'고 누가 말하자 나는 그보다 더욱 불편해졌다. 아니 불편하면 불편했지 그걸 이렇게 코앞에서 적나라하게 말해도 되는 건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상담 선생님은 그의 표현을 은근 격려하는 듯 했다. 그는 내 말이나 행동에서 어떤게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조목 조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이 시선을 나에게 돌려 내 감정을 물어봤을 때 나는 나에 대해 표현했던 그의 말이 틀렸다고, 부당하다고 말했다. 설사 그렇게 느껴졌다 하더라도 내가 일부러 상처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섭섭하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상담 선생님은 오히려 나를 제지했다. 남의 말에 뭐라 평가하지말고 그냥 나도 감정 표현을 하라 했다.


그 당시 나는 의견을 말하는 것과 감정을 말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둔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느라 나는 내 감정을 읽지 못했다. 저 멀리서 서러움이 밀려오는데 중간에 냉정한 이성이 그를 막아서고서는 "가만 있어봐! 지금은 내가 나설 차례야!!"하고 말했다. 나는 계속 항변만 했다.


상담 선생님은 자꾸 내 감정을 물어봐줬고 나는 한참이나 있어서야 조금 내 감정을 말할 수 있었다. 마침내 내가 서럽고 아프고 속상하고 상쳐주고 싶지 않은데 스스로도 어찌 안되는 것이 참 맘 아프게도 좌절스럽다고 털어놨을 때 상담 선생님은 나를 그렇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셨고, 나를 불편하다고 했던 그 사람 조차도 나의 이런 표현을 봐서 너무 반갑다고, 차갑게만 느껴졌는데 참 좋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 사람이 나는 불편하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면, 나 역시 내 이런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난생처음 참여했던 집단 상담에서의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부쩍 감정표현을 더 잘 하게 되었고, 타인의 표현도 잘 받아주게 되었다.


한 번 속살을 보여주고나니, 무슨 심리적 노출증이라도 생긴 것 마냥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거추장한 체면은 필요없었다.


감정을 쉽게 표현하면 큰 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누구에게 부당한 상처라도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표현을 하는 것이 오히려 타인을 도울 때가 많았고, 타인도 나를 도울 수 있었다.


그 집단상담에서 내가 순진하고 의아한 눈빛으로 사람들에게 물었었다. "꼭 말을 해야 아나요?"


사람들을 애정어린 답답해하는 목소리로 일제히 내게 외쳤다.


"말을 해야 알죠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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