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에게 관심을
상담자는 어떤 때 행복해할까요?
사람들은 보통 상담을 받는 '내담자' 입장에서 궁금증을 느낍니다. 상담을 받으면 효과는 있는지, 자신에게 맞는 상담 이론은 무엇인지, 상담을 하게 되면 어떤 일들을 겪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상담해주는 이 상담자는 어떤 경우에 울고 웃는지,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내므로, 상담실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기 바쁘지, 상담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가끔 호기심이 동한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선생님은 이럴 때 없었어요?"하고 물으면 상담자는 "왜 그 부분이 궁금해졌어요?"라거나 "OO 씨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해볼까요?"라는 노련한 말로 다시 초점을 내담자에게 돌려줍니다. 사실 이것은 상담적으로도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꼭 상담시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담자는 상담자에 대해 궁금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마음 열어놓고 전심으로 들어주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상담자를 단지 돈 받고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해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상담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지는 경우는 오히려 이렇게 상담자를 상담자로만 바라볼 때입니다. 상담자는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기 전에 서로 간에 진심을 털어놓고 대화하는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상담시간에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주제를 돌려 상담자에 대해 캐묻는 것은 불편하고 안타깝지만, 상담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결실을 맺어갈 즈음 내담자가 편하게 던지는 "근데 선생님도 이렇게 힘들 때가 있었어요?"하는 질문에는 상담자도 많은 반가움과 기쁨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상담 시간이 내담자를 위한 비싼 시간이기 때문에 상담 시간에 상담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길게 꺼내놓지는 않지만 짧은 몇 마디의 말이나 답변을 통해서라도 상담자는 기쁘게 자신의 감정과 진솔한 경험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아 나의 상담 선생님도 이런 (인간적인) 면이 있구나'하는 발견은 내담자에게도 쏠쏠한 행복이 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심리학에 대한 글들은 참 많고도 많은데, 심리학자의 솔직한 심정에 대해 말하는 글은 좀처럼 없어서 저 자신도 의아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많은 심리학적 지식을 자랑하고, 남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많이 들어주지만, 막상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겁도 많고, 의심도 많고, 혹은 서투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상담자가 또는 심리학자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감정을 하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소한 꽁알 거림에도 궁금해하는 분이나 관심을 갖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이자 상담자로 일해 오면서 기뻤던 순간이 몇 번 있습니다.
오랜동안 집에만 웅크려 있던 내담자가 마침내 학교로 돌아가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때
내담자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는 게 재미있다고 느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친구가 없던 아이가 마침내 "이제는 (선생님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어요"라고 했을 때
방황하는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어 마침내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맛난 것을 사 가지고 왔을 때
이처럼 상담자의 행복을 꼽으라면 우선순위는 단연코 내담자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여러 기특한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행복감보다는 좀 더 농도가 짙고,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보며 느끼는 기쁨보다는 수적인 면에서 좀 더 많습니다. (자녀를 동시에 20명쯤 키우는 느낌일까요?)
상담이 잘 안되거나, 내담자에게 상처받았거나, 혹은 생계 문제를 느낄 때 상담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가끔씩 느끼는 이런 감정과 경험 때문에 "에이 그래도 이만한 게 있나"싶은 마음이 다시 듭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세상에 사람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고, 사람 돕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심리학자인 상담자는 상담 외에도 사실 느끼는 행복한 순간들이 더 있습니다.
때로 심리학과 관련한 강의를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상담 시간에는 함부로 가르치려 들려고 하거나 지식 자랑을 해서는 안되지만, 강의 시간에는 마음껏 가르쳐도 됩니다. 어설프지만 시간 강사로 강단에 처음 섰을 때 열심히 경청하려는 학생들의 눈빛은 잊을 수 없습니다.
심리학과 관련된 글을 쓰는 것도 즐겁습니다. 내가 느꼈던 경험들이나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동료 상담자들과는 이야기 나눌 수 있지만, 익명의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또 다른 행복입니다. 또한 글을 쓰면서 경험이 정리되고, 나만의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도 큰 기쁨입니다.
인접한 분야나 유관 기관과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즐겁습니다. 심리학자인 정체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식을 나누며,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은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IT 분야 지인들과 몇 개월간 정기적으로 목적 없이 만나 서로의 분야에 대해 소개하고 알아가던 때도 참 좋았습니다.
또 다르게는 제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성장하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비록 아직도 여전히 미숙한 사람이지만, 그동안 배우고 경험해왔던 일들을 대해 내 문제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고, 타인에 대해(또는 가족에 대해) 조금은 덜 상처 주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좀 더 깊은 고민과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은 참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상담자로서, 심리학자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왠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담자인 사람에게도, 심리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지망생에게도, 심리학자를 지식 자랑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원래 이 글은 심리학자가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경험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상담자의 경험 이야기에 글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기승전결도 아닌 애매한 형태가 되어버렸지만, 일단은 그냥 이렇게 두려고 합니다. 언젠가 다시 보고 정리가 되면 다시 손을 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collections/1236?photo=i2gRuGD-g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