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음을그리는화가 May 31. 2017

왕따를 극복하는 법

청소년 상담 이야기

길거리에는 개성 강하고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이 많지만

상담실의 청소년 중에는 수줍고 얌전한 친구들이 많다. 


왕따 문제는 가장 흔한 내원 사유 중 하나이다. 

자기를 잘 꾸밀 줄도 모르고, 대처를 잘 못해서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많지만

친구도 많고 활발하게 지내다가 어떤 계기로 왕따가 되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래서 왕따의 문제는 - 대인관계의 문제는 특별한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인관계의 문제로 상처 입은 청소년들과 상담 작업을 해나가면서 

일종의 공식같이 정립한 방법들이 있다. 



1단계 - 철수(withdrawal / 세상에서 내면으로 시선 거두기)


이미 타인에게 소외당한 친구들을 데리고, 세상으로부터 철수하는 작업부터 하다니, 뭔가 이상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쉽다. 치열한 전장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를 살리려면 일단 후방으로 옮겨야 한다. 치열한 전장에 남아 있다가는 상처만 반복될 뿐이다. 


왕따를 당한 친구들은 대게 타인에 대한 분노나 무서움에 휩싸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초점을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일단 옮겨야 한다. 자신에게 상처 주었던 그 타인이 누구인지와는 상관없이, 초점을 자신에게 돌려 자신이 지금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불필요한 자극이나 정보에는 잠시 귀를 닫고, 진짜 중요한 작은 것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타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에게로 초점을 두면 무언가 작업을 할 작은 에너지가 마련될 수 있다. 

 


2단계 - 자기 방 꾸미기


사람은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을 자신의 마음속 방에 초대한다. 풍부한 내면을 갖고 있는 사람은 찾아온 손님에게 많은 것을 대접할 수 있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사람은 마음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찾아와도 내어줄 작은 음식 하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기껏 왔던 손님도 텅 빈 거실을 대충 돌아보고서는 그냥 돌아갈 뿐이다. 


자기 방 꾸미기는 왕따 청소년이 스스로 갖고 있는 자원을 돌아보고 가꾸는 작업이다. 

어떤 청소년은 뜻밖에 재미난 그림 솜씨가 있었고, 어떤 청소년은 남의 이야기를 비판하지 않고 들어주는 재주가 있었다. 또 어떤 청소년은 일본 만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사소하지만 가치 있고, 숨어 있지만 기꺼이 남에게 내어 대접해줄 만한 무언가를 발견해주는 것이 상담의 역할이다. 볼품없다고 숨겨 놓은 그런 소재들을 잘 닦고, 수선해서 마음의 방 곳곳에 잘 비치해두면 누군가 그의 내면이 궁금해 찾아왔을 때 근사한 차 한잔은 대접할 수 있다. 



3단계 - 목표 재설정


내면으로 돌아와 방까지 꾸몄으니 이제 다시 손님을 기다려볼 차례인가? 아니다. 


왕따를 당하는 -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은 흔히들 그런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박관념은 스스로를 옥죄고, 행동을 더욱 경직되게 만든다. 


친구가 없다고 초라해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이 있다. 

"친구를 많이 만들 필요는 없어, 올해 안에 한 명도 못 사귀어도 괜찮아. 보석이 귀해서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친구도 그렇게 만나기 힘들고, 갖기 힘들단다. 사람들은 쉽게 친구를 사귀는 듯 하지만 평생을 두고 보면 중년의 어른이 되어서까지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평생 동안에 한 두 명도 만들기 쉽지 않단다. 네가 만약 죽기 전까지 진짜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단 한 명만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너는 꽤나 성공한 사람일 거야. 물론 그런 친구를 가지려면, 네가 먼저 그런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야겠지" 


그래서 왕따 청소년의 고민은 '사람들과 잘 지내기'에서 '진정한 친구를 발견하기'로 바뀌게 된다.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평생 동안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한 명을 찾아보는 것은 그보다는 현실적이고, 시간적으로 급하지 않고, 또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4단계 - 관계 연습하기(울타리 보수하기)


과도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 실현 가능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그런 목표로 수정이 되었다면 

이제 그 목표에 맞는 구체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를 연습해 보는 것이다. 


상담자는 대인관계에 있어 좋은 연습 상대이다. 상황과 역할에 따라 다양한 대역을 해줄 수 있다. 

때로는 한 없이 들어주고, 때로는 맞받아치기도 하고, 때로는 약 올리기까지 하지만 

결코 비난하지 않고, 그럼에도 또 쉽게는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그런 상대이다. 


대인관계 연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잘 정하고, 지키는 일이다. 

누굴 쉽게 들여서도 안되고, 찾아오는 손님을 야박하게 내 쫒아서도 안된다. 

때로 그런 정도를 정할 수 있는 마음의 경계가 훼손되어 있다면, 너무 높지도-낮지도 않은 적절한 높이의 울타리로 수리를 해야 한다. 



5단계 - 창 밖 풍경 바라보기


자기의 내면으로 돌아와서, 정신을 차리고, 목표를 재수정하고, 일정하게 연습까지 잘 했다면 이제는 그보다는 좀 더 넓은 차원의 일을 해볼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된다. 


나는 왕따 문제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만 보지는 않는다. 치열한 경쟁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남을 배척하고 밀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사회의 병리는 개인의 병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개인 상담을 잘 받고 회복이 된 내담자가, 병든 사회로 다시 돌아갔다가 금세 다시 병들어 돌아오는 일을 나는 많이 봤다. 


그래서 마음의 방에서 나가 사회로 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 그것은 내 주변의 풍경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 관점은 객관적이고 차분하고 통찰력 있어야 한다.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갔을 때 전과 같이 동일하게 나를 공격하고 상처 주는 그런 것들에 대해 전처럼 똑같이 상처받아서는 안된다. 나의 잘못이나 병리가 아닌, 사회의 병리와 폐악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가 잘못한 것은 사회가 변해야 한다. 


그런 단계에서 나는 청소년들에게 말해준다.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로움을 두려워해. 그럴 때 주로 남에게 상처를 준단다"

"이제부터는 네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는 더 이상 상처받지 마"



6단계 - 내면에서 세상 밖으로(유대감의 확장)


왕따를 극복하는 것의 최종 결론은 무엇일까?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그렇게 개인 차원의 행복을 찾는 것만으로는 그 행복은 유지될 수 없다. 

기왕이면 개인의 성장은 더 넓고 깊은 곳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상담실의 청소년들이 치유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놀라운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바로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품어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다. 


내 상처를 회복하는 것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처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상처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잘 회복된 사람들은 자연스레 상처 입은 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 

단순한 동정이나 자신의 회복 경험을 전수해주고 싶은 과욕이 아닌, 수평적인 유대감 때문에 그렇다. 


왕따 문제의 핵심은 누가 누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간의 건강한 유대감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건강한 연결의 방법을 모를 때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양, 제물로 삼아 자기들끼리는 돈독해지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왕따 현상은 사회적인 미성숙함의 솔직한 반영이다. 


상담의 종반부에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억지로 무리하게 친구를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어. 그건 절대 급할 필요가 없어"

"하지만 이웃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끊임없이 알아볼 필요가 있어. 사람은 결국 마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으로 행복해하는지 궁금해해 볼 필요가 있어. 네 이웃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네 삶에 재미있는 일들도 많아질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자의 행복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