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집안일
<오늘 한 집안일>
- 커피 내리기
- 설거지(플라스틱 반찬통은 식기세척기 일반 모드로 돌리면 녹아서 변형되기도 해서 따로 모아 절약모드로 돌림.)
- 행주가 더러운데 빨아봐도 안 돼서 삶음
- 걸레 빨기(세탁기 손걸레 모드로)
- 집 바닥 전체 밀대걸레로 밀기
- 뭔가가 한가득 올려져 있는 보조 싱크대 위 정리. 여긴 내가 정리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 물론 어지럽히는 것도 내가 제일 많이 하지만.
- 음식물 쓰레기 두 통 버리기. 다른 계절도 그렇지만 여름엔 하루이틀만 지나도 음식물 쓰레기 통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다. 빈 통에 물 담고 세제를 뿌려놓음.
- 화장실 세면대 비누로 문질러놓음
- 분리배출통에 세제 뿌려놓음
(오늘 집안일 한 시간 : 두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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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집안일 잘하는 꿀팁' 같은 글로 잘못 알고 읽는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아이 셋 서울대 보낸 엄마가 항상 강조한 이것!' 이라던지 '하루 15분 정리로 깔끔해지는 내 하루' 같은 글이 아니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힘내세요'에 가까운 글이라는 걸 밝혀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집안일을 하는 절대 시간만 짧은 게 아니라 요령도 없고 능력도 부족한 쪽에 가깝다. 청소 잘하는 꿀팁은 얼마든지 검색 가능하고 나같이 집안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집안일이 힘들다는 걸 이렇게 구구절절 글로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뭐.라고 말하면서도 집안일에 패배한 사람이라는 열패감은 항상 있다.
모델하우스 같이 정리된 집 사진을 보면, 저건 라면 봉지에 그려진 연출된 조리예처럼 보이지 않고, 나 빼고 다들 저렇게 해놓고 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직장을 다녀도 집안일은 왠지 여성이 메인인 것 같고, 자고로 완벽한 여성(?)이라 함은 직장일도 프로페셔널하게 하고(그러나 너무 큰 욕망을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면 안 됨) 집안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자녀 교육도 당연히 포함됨)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아무튼 그러한 '완벽한 여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래도 행주는 내가 빤다.
집안일에서 행주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요새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싱크대나 식탁, 밥상을 걸레로 닦을 순 없으니 필수적이면서도 걸레보다 관리가 훨씬 힘들다. 사용하고 바로 빨아놓지 않으면 다시 싱크대에 접근했을 때 깜깜한 밤에 불도 안 켜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청소년과 같은 포스를 풍기며 어두운 기운을 내뿜는다. 제때 빤다고 해서 다는 아니다. (물론 나는 제때 빠는 사람이 아니긴 하다) 그때그때 주방세제를 묻혀 조물조물 빨아놔도 사흘도 못 가 쉰 냄새를 풍긴다. 빨아서 널어놔도 마찬가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점점 거무튀튀해지기도 한다. 온몸으로 '나 좀 해결해 달라고!' 외치는 듯하다. 참으로 자기주장이 강한 물건이다.
일찍이 나는 이러한 행주와의 싸움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일회용 행주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깨끗한 행주를 사용하고 싶다는 열망이 과도한 일회용 쓰레기 배출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한 죄책감을 충분히 눌러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일반 행주도 어설프게 함께 사용한다.
오늘도 거무튀튀하게 냄새를 풍기는 행주를 삶았다. 스텐 양푼에 넣고, 과탄산 소다 약간과 주방세제를 넣고 약한 불로. 불에 올려놓고 딴 일을 하다가 졸여없애버린 수많은 국들을 떠올리며, 물이 끓을 때까지 노려보고 있다가 바글바글 몇 번 끓고 나서 불을 껐다.
글을 쓰다가 다시 가서 보니 행주의 거무튀튀함이 행주 빤 물로 옮겨갔다. 물로 헹궈 냄새를 맡아보니 빨랫비누 냄새만 남았다. 깨끗한 행주를 보니 왠지 기분이 좋다. 행주를 삶게 하는 것은 지저분한 행주의 색과 냄새가 아니라 삶은 후의 깨끗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든다. ‘하… 또 냄새 난다’, ‘아 누가 안 볼 때 갖다 버릴까’가 아니라 이렇게 뽀얗고 냄새 안 날 때가 있었지, 나 아니면 누가 삶아. 하고 생각하는 꼭 필요한 짧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