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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튼 Aug 13. 2024

‘오늘의 집안일’

오늘의 집안일

시작은 이렇다.


집안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미룬다. 바닥에 뭔가가 서걱서걱 밟혀도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들어와 자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방학이 되자 참기가 어려워진다. 여행도 잘 가지 않고 웬만하면 집에만 있을 건데, 이건 아니다 싶어 집안일을 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루에 서너 시간을 하는데도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다. 깨끗함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가 아니다.


느낌이 온다. 아 그랬지. 집안일이라는 게 이랬지. 안 하면 엉망인데 해도 티가 안 났지. 그래서 내가 안 했지.

억울해졌다. 그래서 그날그날 내가 한 집안일 목록을 쓰기로 했다. 아래는 이 글을 처음 쓰던 날 내가 한 집안일 목록이다.


<집안일 목록>


- 냉장고 정리를 했다. 상해서 더 이상 먹지 못하는 다섯 종류 이상의 반찬과 역시 심하게 상한 호박, 오이를 버렸다. 갖은양념을 넣고 공들여 만든 게 아까워 담아둔 양념간장류는 못 버렸다. 결국은 안 먹을 것 같은데… 미련이 남아서 나중에 버려야겠다.

- 검거나 어두운 색깔 옷 빨래 한 통 가득 돌리고 널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빨래를 너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 마른걸레를 밀대에 끼워 돌아다니며 먼지를 모으고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였다. 진공청소기 입구에 커다랗게 끼어있던 먼지 덩어리를 떼어냈다. 어쩐지 진공청소기가 계속해서 먼지와 작은 쓰레기를 퉤 퉤 하고 뱉어내더라니.

——

저 정도의 집안일이면 적어도 두 시간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글로 적어놓으니 몇 줄 안 된다. 만약 식구 중 누군가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 집을 봤다면 ‘아 더럽지 않네?’ 수준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가 들어오기 전에 치운 걸 다시 더럽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수가. 집안일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아마도 보통의 내 나이대 여성들에 비해 집안일을 적게 하는 편일 것이다. 집안일을 적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일단 더러움에 대한 인내심이 큰 편이고, 깨끗함을 위하기보다는 내 한 몸의 편안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난 집안일 깨나한다 하는 내 나이대 다른 남성들에 비하면 많이 하는 편일 것이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어떨 때는 하다가 성질이 나고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하루이틀만 안 해도 집안은 엉망이 되지만, 아니, 하루이틀이 다 뭔가. 한두 끼 먹은 것만 쌓아둬도 싱크대는 이미 넘칠 듯하다. 반대로 긴 시간 공을 들여 집안일을 해도 그저 ‘음, 조금 쾌적하군’ 정도의 느낌밖에는 받을 수 없다. 잠시만 안 치우면 다시 지저분한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흑)마법.


간혹 집안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을 때도 있다. 직장일이 너무 고되어서 차라리 집안일을 하는 게 나을 때, 그리고 육아와 집안일을 둘 다 해야 하다가 집안일만 해도 될 때. 그리고 청소를 마친 뒤 ‘음, 조금 쾌적하군’ 하고 쾌적함을 느끼는 짧은 순간에는 조금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집안일을 하다가 매일, 내가 그날 한 집안일을 기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는 데까지 써볼 참이다. 다른 여성에 비해 집안일을 적게 한다면서 무슨 자격(?)으로 쓰냐고 묻는다면…


원래 집안일을 엄청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은 바빠서 집안일에 대해 못 쓴다. 나같이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거다,라고 우겨보겠다.


과연 집안일은 끝이 없으니 글도 끝없이 쓸 수 있을 것인가. 이 시리즈가 마무리되는 언젠가 나는 집안일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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