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문 안에서> 17장. 상식과 비상식
정수는 복도를 지나가다, 상담실 안을 힐끗 들여다보았다.
영애가 혼자 앉아 있는 걸 본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
“아! 네, 실장님.”
영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내밀었다.
정수는 영애 맞은편에 앉아 상담실을 둘러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입에서 무거운 말이 나올 것 같았다.
한숨을 길게 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진 엄마에게서 또 연락이 왔던데.”
영애가 무슨 내용일지 짐작하는 사이, 정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하진이가 상담받고 나서 더 거칠어졌다네요. 전엔 그저 말을 안 들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대든답니다. 자기 논리로 엄마를 가르치려 한대요.”
정수는 잠시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예전엔 깨우면 마지못해 일어나던 애가, 이제는 ‘나가!’라고 소리친대요. 잔소리 좀 하면 ‘그게 효과가 있을 것 같아?’라고 되묻고요. 이게 상담의 결과입니까?”
영애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러자 정수의 표정이 굳어갔다.
“웃으세요? 지금 웃긴다는 겁니까?”
영애의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하진이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련돼진 않지만, 분명한 자기표현의 시작이다.
폭발 대신 말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수는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 겁니까? 잘했을 땐 칭찬하고, 잘못했을 땐 혼내야 해요. 그게 상식 아닙니까?”
영애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상식이죠.”
그리곤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데요, 실장님. 꼭 상식대로 살아야 할까요?”
정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라고요? 상식대로 안 살면 비상식적으로 살겠다는 겁니까?”
영애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짧고 조용한 한마디.
정수의 얼굴에 당혹과 분노가 교차했다.
“이분 위험한 사람이네. 다음 주가 개학인데, 책임지실 겁니까?”
영애는 정수를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제 행동만 책임져요.”
“하진 엄마와 다시 이야기하겠어요.”
정수는 문고리를 잡고 잠시 서 있다가 뿌리치듯 나갔다.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렸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 하진이었다.
하진은 들어오면서 툴툴거렸다.
“엄마가요… 어제는 형 밥 먹을 때 먹으라고….”
그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하진은 의자에 앉으면서 하던 말을 계속했다.
“게임 하다가 저녁 먹으라고 하길래 ‘잠깐만!’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갑자기 ‘당장 와!’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다가… 다시 앉았어요.”
하진은 말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랬더니 또 소리치잖아요. ‘왜 다시 앉아?’ 이러면서요. 전 등을 돌린 채 말했어요. ‘안 그래도 먹으려 했는데, 엄마가 독촉하니까 그러지!’ 엄마가 오라고 해서 내가 일어난 줄 알 거잖아?”
영애는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떠셨어?”
“엄마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어요. 엄마 입에 거품 나는 줄 알았다니까요.”
“형은?”
하진은 피식 웃었다.
“형은 그냥 밥 먹더니 절 흘깃 쳐다봤어요. 근데 좀… 부러운 눈빛이었어요. 그리고 엄마 눈치 보더라고요.”
하진은 잠시 형 표정을 생각하다 물었다.
“선생님, 왜 자꾸 ‘누가 어떻게 했는가’를 물으세요?”
영애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지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거든. 모든 상황은 정보일 뿐이니까.”
하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엄마가 부를 때 제가 다시 앉은 건… 좋은 행동은 아니었을까요?”
영애는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좋은지 나쁜지보다는, 네 행동이 효과가 있었나 묻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진은 시선을 내려 손끝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영애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하진의 얼굴을 살폈다.
“네가 원하는 게 있었겠지?”
하진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강요하지 말라는 거요. 제 선택을 존중해달라고요.”
“넌 자유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던 게지.”
“네네. 맞아요. 바로 그거요.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왜?’라고 왜 안 물어요? 다른 어른들은 모두 왜 그랬느냐고 묻잖아요?”
영애는 빙그레 웃었다.
“너 지각했을 때 선생님이 ‘왜 늦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
“늦잠 잤다고, 엄마가 안 깨워줬다고, 버스가 밀렸다고….”
“그렇지? ‘내 생존 욕구 충족시키려고 더 자기로 선택했어요.’라고 대답하지는 않지?”
하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왜’라고 물어서 대답하면 꼭 변명한다고 또 혼내더라고요.”
영애는 그 웃음 끝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남들처럼 하지 않으니까 이상해 보이지?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그러니?
하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앞으로 당겼다.
“아까, 그거요. 게임 할 때 밥 먹으라고 소리친 거. 엄마가 잘못한 거 맞죠?”
영애는 잠시 미소를 머금었다.
“잘못이라기보다는… 엄마는 상식적으로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상식적으로 사랑한다고요?”
“많은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엄마도 그게 상식이라고 믿었을걸?”
영애는 두 손을 모아 테이블 위에 올리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상식이 항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비상식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많거든.”
하진은 눈을 크게 뜨고 듣고만 있었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훈육을 해야 한다고 믿었겠지?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어야 한다고. 이게 상식이거든. 너 혹시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 들어봤어?”
“네. 말 훈련할 때 하는 거죠?”
“맞아. 이걸 자녀 훈육에 적용하는 거지. 이건 결국 조건적 사랑이 되겠지? 아이는 존재가 아닌 성과로 대우받으니까.”
하진은 진지하게 물었다.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줄 때의 기준은 누가 정해요?“
영애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너를 칭찬할지 혼낼지를 누가 정하든?“
“엄마, 아빠가요.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요. 말을 잘 들으면 예뻐해 주지만, 말을 안 들으면 화내요.”
영애는 혼잣말하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아이를 통제하는 권력으로 쓰이고 있구나. 사랑이 권력이라….”
하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형이 불쌍해요. 엄마 사랑을 받으려고 통제를 당하는 게.”
영애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흔히들 그래. 다들 그러니까, 그게 상식이지.”
하진은 얼굴을 찡그리며 낮게 말했다.
“그럼 상식은… 정서적 학대가 될 수도 있네요.”
하진은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나쁜 상식을 믿고 있을까요?”
영애는 몸을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상식이 다 나쁘기야 하겠어? 관계를 해치는 상식이 문제지. 글라써 박사는 이렇게 말했거든. 상식대로 살아서 불행하고, 비상식대로 살아서 행복하다면, 그래도 상식대로 살겠느냐고. 너는 어때?”
“전 싫어요. 비상식이라도 행복한 게 좋아요.”
영애는 하진의 단호한 대답에 말을 이었다.
“또 이런 말도 했어. 상식은 많은 사람이 ‘맞다’라고 믿는다고 해서, 그게 꼭 진리는 아니라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여기서 선생님 만나고 나서, 전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를걸요? 그럼 현실치료가 비상식인가요?”
하진은 소리 내어 웃었다.
영애는 상담실을 나가는 하진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면서, 지난날 딸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상식적인 사랑으로 훈육하려다 저지른 폭력.
아이들은 훈련 대상이 아니다.
생명의 주체다.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감자 싹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자라지.
딸은 그 믿음이 현실이 된 증거이다.
영애는 자리에 돌아와 앉아 상담일지를 폈다.
중요한 건 등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등교.’
펜 끝이 잠시 머물렀다.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이 믿고 있는 상식은 무엇인가요?
그 상식은 지금, 당신의 삶에 도움이 되고 있나요?
만약 상식대로 살아서 불행해지더라도 상식이니까 그대로 살기를 고집하겠습니까?
아니면, 행복해지기 위해 비상식이지만, 비상식대로 살겠습니까?
※상식과 비상식
상식은 누구나 그렇다고 믿는, 의심 없는 생각들이다.
‘논리적 증거 없이도 자명하다고 여겨진다.
다수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일상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이나 규범이다.
비상식은 상식의 당연함을 의심하며, 말도 안 되는 생각처럼 보인다.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비전형적인 판단이다.
통념이나 다수의 기대와 어긋나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