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문 안에서> 제18장. 자기 평가와 비난
하진은 상담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뜨거운 공기와 매미 소리가 밀려들었다.
문을 닫자, 소음과 열기는 물론 세상도 밖으로 밀려났다.
이곳 에어컨 냉기 속에서는 창밖의 뜨거운 태양조차 다정했다.
“어! 왔구나.”
영애는 사무용 책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 나오며 맞이했다.
하진은 말없이 웅크리듯 앉았다.
“어떻게 지냈어?”
한참을 입술만 깨물던 하진이 마침내 입을 뗐다.
“…학교 갔어요.”
“그래?”
영애가 미소 지었다.
“용기 냈네.”
하지만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제가 원한 게 아니에요….”
영애는 눈썹을 올려 하진의 말을 기다렸다.
“엄마가… 상담을 이 정도 했으니, 이젠 학교 가야 한다고 해서요.”
하진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제가 계속 버티면… 선생님 탓할까 봐서요. 엄마 아빠가요.”
영애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부모님은 네가 학교에 가기를 원하셨구나.”
“….”
“너는 부모님이 널 믿고 기다려주길 바랐던 거고?”
하진은 얼굴을 치켜들었다.
“네, 맞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하진은 조금 더 몸을 움츠렸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에 힘을 주었다.
“저만 이렇게 힘든 걸까요? 엄마 말대로 제가 예민해서요? 형은… 형은 맨날 괜찮은 척하잖아요.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대들지도 않고요.”
영애가 고개를 기울였다.
“형이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아?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하진은 움찔하다 고개를 저었다.
“행복요? 글쎄요… 형이 웃을 때 보면, 눈은 안 웃어요. 무섭기도 하고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진은 시선을 멀리 두었다.
“엄마 아빠는 외부 통제의 대가예요. 이걸 고쳐라, 저걸 고쳐라. 이걸 하라, 저건 하지 마라.”
하진은 고개를 숙이더니 갑자기 헛웃음을 웃었다.
“하긴, 저도 다를 게 없지만요.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저도 늘 탓하니까요. 이 말도 외부 통제인 거, 맞죠?”
영애는 탁자 위에서 두 손을 깍지 끼고 말했다.
“부모님은 너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너는 부모님에게 통제당한다고 믿었구나.”
하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통제해서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겠지? 통제당한다고 믿어서도 그렇고.”
“네, 맞아요.”
하진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원하는 것은커녕…. 보시다시피 이래요….”
하진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은 여전히 눈이 부셨다.
그러나 그 빛의 끝에는, 여름의 열기가 한 뼘쯤 물러났다.
길 건너 은행잎 몇 장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하진을 따라 창밖을 보던 영애는 천천히 하진에게 얼굴을 돌렸다.
“하진아, 만약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누구의 행동으로 얻을 수 있을까?”
하진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제 행동이요.”
영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면, 누구의 행동을 평가해봐야 할까?”
하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 행동…요?”
“그렇구나.”
끝이었다.
영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낯설었다.
‘그러길래, 네 행동을 돌아보라고 했잖아!’
이 말이 뒤따라 나와야만 할 것 같았다.
이렇게 단순한 걸 왜 이제야 깨닫는 걸까?
엄마가 소리 지르면 문을 닫고 들어갔고, 화나면 박차고 나갔다.
사랑받고 싶었으면서, 정작 그 사랑을 멀어지게 만든 건 나였다.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요.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제 행동을 평가해야 했는데. 남 탓만 했네요. 그래서 이렇게 살았나 봐요.”
영애는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그런 것 같아? 남을 탓한다는 건 나의 주인 자리를 남에게 내주는 거겠지?”
“네?”
놀라는 하진에게 영애는 말했다.
“아, 주인이라는 말? 남을 탓하는 건 나의 선택권과 통제력을 남에게 넘겨주는 셈이라고…. 자기 평가는 자기 성찰을 의미하거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야 성숙한 성장을 하겠지?”
하진은 동그란 눈으로 듣고 있다가 고개를 떨궜다.
“부모님은 저를 평가하고, 저는 부모님을 평가하고…. 여태 이러고 살아온 거네요.”
영애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예전에는 그랬다는 거지?”
“네.”
영애는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하고 싶니?”
영애의 질문은 늘 단순하다.
과거를 헤매는 하진을 언제나 현재로 돌아오게 한다.
과거를 자책하는 하진에게 미래의 희망을 찾게 한다.
“이제… 저를…. 남 행동을 판단하느라…. 제 행동을 볼 기회를 잃고 싶지 않으면요.”
하진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마는 맨날 똑같다고 여겼어요.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그런데 바뀌지 않은 건 엄마만은 아니었어요. 저도 맨날 도움도 안 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상담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의 말끝에 따라붙은 떨림이 공기 속에 남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그 떨림을 가져갔다.
하진은 한 손을 다른 손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선생님, 부모님이 저한테 늘 하던 말들요. ‘넌 왜 이 모양이냐?’, ‘언제 철들래’ 이런 거요. 그런 말들이… 왜 그렇게 듣기 싫었을까요?”
영애는 눈을 반짝이며 심각하게 말했다.
“남이 내 행동을 평가하는 건, 비난이거든. 비난은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글라써 박사가 말한 적도 있거든.”
하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잘못을 모르면, 알려 줘야 하지 않을까요?”
영애는 미소 지었다.
“건설적인 비판 말이니? 어떤 무엇도 상대의 욕구를 좌절시키면, 파괴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럼, 상대가 잘못한 걸 어떻게 알려줘요?”
영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좋은 질문이네.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되지 않을까? 결국 잘못되었다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니까. 또 다른 방법은…”
하진은 영애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질문하면 어때? 자기 평가 질문을? 스스로 평가해 보게.”
“어떻게요?”
“네 행동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은 데 도움이 되느냐고….”
하진은 지난주 엄마의 놀란 모습이 떠올랐다.
일어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그게 효과가 있을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엄마는 움찔하며 뒤로 나자빠질 듯 충격을 받던 모습. 그리고 곧 화를 내긴 했지만….
하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네요.”
그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그래서 엄마가 뭐라고 하면, 제가 더 고집을 부렸나 봐요. 제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고 싶어서요.”
그는 영애를 돌아봤다.
“선생님은 절 평가하지 않으시잖아요. 그저 묻기만 하시죠.”
영애는 미소로 기다렸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 앞에선, 엄마한테 하듯 못하는 거죠. 결국, 선택도 책임도 제 몫이니까요.”
하진은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제 행동이 제가 원하는 걸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면…”
영애는 숨을 멈췄다.
하진이 말을 이었다.
“그건…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그 말은 하진 자신도 예기치 못한 깊은 울림이 있었다.
영애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고 싶니?”
하진은 고개를 들더니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행동만… 제 행동만 볼래요.”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엄마 아빠든, 친구든, 누가 뭐라고 해도 정보로만 보려고요. 이제는 제 행동이 제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되나 하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상담실 안은 조용했다.
그러나 적막하지는 않았다.
하진은 가방을 메고 상담실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며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내 욕구는 내가 충족시켜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면 내 행동을 돌아본다.
남을 평가하면 비난이고, 나를 평가하면 성찰이다.
복도 끝 창문으로 하얀 햇살이 비쳐 들었다.
떠다니는 먼지들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같은 세상이 왜 예전과 다르게 보일까?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누구의 행동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당신은 누구의 행동을 평가하나요?
상대방의 행동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행동인가요?
※자기 평가와 비난
자기 평가는 내가 선택한 행동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선택한 내 행동이 내가 원하는 삶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이러한 자기 평가 질문은 성찰의 시작이고, 변화의 출발점이다.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남을 탓하지 않게 된다.
자기 평가는 책임감을 증진하고 변화를 촉진해 성장하는 삶을 살게 한다.
내 삶의 통제감을 느끼게 한다.
비난은 내가 기분이 나쁜 이유를 타인의 행동에서 찾아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믿는 순간 내 삶의 주도권을 잃게 되어 성장이 멈춘다.
비난은 서로를 원망해 관계가 악화한다.
또한 타인은 바꿀 수 없으므로 남 탓을 하는 순간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을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