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영역을 넓히는 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같아요.
교육 영역이 넓을 때는
부모와 자녀 마음의 감정이 정상 상태에 있을 때이고,
부모와 자녀의 마음이 둘 다 편하면
화목하니까요.
가능한가?
네. 물론 가능합니다.
가능하지 않으면
복잡한 마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할 필요가 없겠죠?
이제 부터는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방법을 나누려고요.
첫째, 부모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부모 마음이 불편해서
교육 영역이 줄어들었으니,
일단은 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해요.
그림에서 보듯이, 부모 마음이 편해지는 정도만큼
교육할 기회는 늘어나지요?
마음이 편해진다는 건,
말 그대로,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의미해요.
부모가 처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고요.
부모가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 오는 거예요.
감정이라는 것은
남과 나누면 희석되잖아요?
부모의 감정은 부부끼리, 또는 자녀와 나누면
그것만으로도 희석되요.
내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누군가와 소통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로 돌아 올 수 있는 거죠.
이렇게 해서 이성이 많아지면
부모가 당면한 문제는 그때 해결하면 되겠지요?
둘째, 자녀 마음이 불편해서
자녀 욕구 충족이 안 되어서,
교육 영역이 줄어들었으니
일단은 자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해요.
그림에서 보듯이, 자녀 마음이 편해지는 정도만큼
교육할 기회는 늘어나지요?
자녀 마음이 편해진다는 건,
말 그대로, 자녀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의미해요.
자녀가 처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 아니고요.
자녀가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 오는 거예요.
감정이라는 것은
남과 나누면 희석되잖아요?
자녀의 감정은 누군가와 나누면
그것만으로도 희석되요.
그 누군가가 낯선 사람보다는
부모라면 더 좋겠지요.
자녀 마음을 부모와 공유하면
자녀가 부모와 소통되어 있으면
감정의 홍수 상태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로 돌아 올 수 있는 거죠.
이렇게 해서 이성이 많아지면
자녀가 당면한 문제는 그때 해결하면 되겠지요?
부모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자녀 마음을 편안하게 하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교육 영역이 넓어 지는데,
둘 다 할 수 있다면
교육 영역이 엄청 넓어지겠죠?
교육 영역을 넓힌다는 뜻은
좀 더 화목한 가정이 된다는 뜻이고,
화목한 가정은 가족이 서로서로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미해요.
소통이 어렵다고요?
전혀 어렵지 않아요.
혹시 어렵게 느껴진다면
마음과 감정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거예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 그게 소통이니까요.
내 감정을 알리기, 네 감정을 알아주기.
앞으로는 이런 훈련을 할 건데요.
서론 빼고 본론부터 말했으면 좋겠다고요?
제가 긴 시간, 짧은 시간,
각종 형태의 강의를 해 봤거든요.
2시간 강의를 한시간으로,
한시간 강의를 35분으로,
머리가 좋으신 분들이
액기스만 말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더라고요.
머리 좋으신 분들을
저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요.
삶은 머리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몸에 익은 태도로 살아가니까요.
본론인 액기스만 말했더니,
왜 이렇게 애써 노력해야 하는지 동기가 약하더라고요.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몸에 익히지를 못해요.
안다고 다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몸에 익힌 행동도 잘 안 될 때가 있거늘.
아빠들 집단에도
이런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요.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괴로워하더라요.
네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알리고,
네 감정을 공유하고
내 감정을 공유하고,
남자분들은 이런 상황이
메스꺼운가 봐요.
이런 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구요.
남자답지 못한 행동들이구요.
이런 걸 한다고 돈이나 지위나 권력이나
힘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라고 여겨져서겠죠.
가족을 지키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외부 통제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요.
하지만 남성 성역할 갈등 GRC를
먼저 소개한 후 이런 훈련을 하면,
정말 열심히 참여하고
하나라도 더 익히려 하더라고요.
결국은 힘이라는 것이
관계에서 나오고,
관계가 곧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가봐요.
어쨌든, 남자든 여자든, 아빠든 엄마든,
'마음'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어요.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보라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에 귀 기울인다는 건
도를 닦으라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마음이란 단어가 부담스러운 분께
다음 편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