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화목하면
교육이 잘 먹히는 이유가
아이 마음과 부모 마음의 감정이
정상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살다보면 늘 편안할 수는 없잖아요?
언제나 늘 수시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겨서요.
이거 하나 만족스럽다 싶을 때
또 다른 문제 거리가 생기거든요.
밥 먹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고,
밤새 잤는데 저녁이 되면 다시 졸리듯이요.
부모 마음이 편했다가 불편해지고,
아이 마음이 편했다가 불편해지고.
불편한 상태를 내버려두면
눈덩이처럼 점점 더 불편이 커지니,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지 말고,
불편할 때마다 수시로
편안한 상태로 돌아오게 하면 좋겠죠?
어떻게요?
어떻게 마음을 홍수 상태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오게 할까요?
아이 마음이 불편할 땐
아이 감정을 헤아려 주고요,
부모 마음이 불편할 땐
부모 감정을 알려서요.
이젠 외우실 것 같네요.
같은 말을 제가 하도 반복하니 지겨울까 봐 염려되기도 하고요.
무엇을 먼저 할까요?
무엇 먼저 하고 싶으세요?
아이 감정 헤아려주기와
부모 감정 알리는 것 중에.
일단 부모 마음이 편해져야 아이 마음이 보이니,
부모 마음 먼저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긴해요.
꾹 참고 부모 마음 알아주길 기다릴 때보다
부모 마음을 알리면 부모의 감정이 이미 해소되어서요.
자녀가 부모 마음을 알게 되니 좋고요,
자녀가 알아주지 않아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정이 해소되거든요.
부모가 자기 마음을 알린다는 건
부모가 이미 자기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거니까요.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미 감정과 거리가 생겼다는 뜻이거든요.
이걸 메타인지라고 하던데, 아무려면 어때요?
마음만 편해지면 되지요.
부모 마음이 편해지면
아이 마음도 보이고, 주변 상황도 보이고요.
그런데 때때로 부모 마음을 알렸을 때
당황스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더라고요.
듣는 사람인 자녀 또는 배우자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들을 처지가 못 될 때요.
언제 들을 처지가 못 될까요?
듣는 사람의 감정이 홍수 상태에 있을 때인 거죠.
내 코가 석자인데
남의 마음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때로는 부모 마음을 알리는 것이
들어달라는 응석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며
도전장을 내밀기도 하거든요.
울고 싶으니,
뺨을 때려 달라는 거지요.
제가 눈치가 없던 시절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만 왜 이렇게 힘들지?
남들은 모두 어려움이 없나 봐.
지금은 예전보다는 나아
남들의 발버둥이 조금은 보여요.
그래도 가끔 실수를 하고
아차! 후회하기도 해요.
상대방이 너무 멀쩡해 보였거든요.
감정이 정상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제 불편한 마음을 알렸더니
반격과 경고와 비아냥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때 저는 알게 되었지요.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아 있다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도록 늘 깨어있어야겠다고.
그게 어디 쉽나요?
늘 깨어있는다는 것이.
안전하기 위해 저는 꽤를 내어
이런 가정을 하기로 맘 먹었어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사람들은 언제나 아프다.
또 이런 도식을 만들었어요.
내 마음을 알리고 싶거든, 상대방 마음을 먼저 알아주자.
상대방의 감정이 홍수 상태에 있든
정상 상태에 있든,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 주는 것은
정상 상태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먼저 듣고,
나중에 말하자.
먼저 알리는 것도 좋지만,
먼저 알아주는 게 더 안전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천국과 지옥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요.
엄청나게 대단한 잔치가 벌어졌다는데요.
끝도 없이 긴 식탁에 진수 성찬이 차려져 있었다는 거예요.
단지 장애물이 있다면
젓가락이 팔 길이보다 더 길었다는 거죠.
지옥에서는 진수성찬을 눈 앞에 두고 굶주렸다네요.
긴 젓가락으로는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없어서요.
천국에서는 진수성찬을 배부르게 먹고 행복했다네요.
긴 젓가락으로 상대방의 입 속에 서로 넣어 줄 수가 있어서요.
부모가 먼저 자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면
자녀도 부모의 마음을 들어주니 천국이 되겠죠?
부모가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리려 하면
자녀도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싶을 테니 지옥이 될런지도요.
이제부터 자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언어 습관부터 다루려고 하는데요.
어떠세요?
내 마음을 먼저 알리지 못해 답답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