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생각에 속지 않는 방법

04. 깨어나기 46

by 쏠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에고(생각, 마음)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깨달음이 시작되고 나면 생각과 마음은 '나'라는 개체를 통하여 떠오르는 것이며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깨달음의 과정에서 극심한 우울증과 고통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에고와 완전히 분리되어, 깨달음을 전파하는 사람들(바이런 케이티, 에크하르트 톨레 등)이 있는 반면, 일반적으로는 '관찰자'로써의 나를 인지하는 데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는 깨달음이 시작되고 나서 오열하는 과정에서 관찰자를 명확히 체험하게 되는 경험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관찰자를 처음으로 인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머릿속에 떠드는 소리들을 객관화하기 위해 훈련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떠드는 생각을 관찰하다가 어느새 그 생각과 동일시되어 내가 그 생각, 상상에 빠져있는 것을 알아차리곤 했습니다. 명상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다가 어느새 생각과 동일시되어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 동일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우리는 항상 관찰자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지하느냐 마느냐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숨을 쉬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숨 쉬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숨 쉬는 방법을 까먹었어!' 라며 불편해하곤 하지만 어느새 다시 숨 쉬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깨달음에 다가가기 위하여, 항상 깨달음의 황홀경에 있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정해진 방법이나 답은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리 니사르가닷다 마하라지처럼 언제나 관찰자로 존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우리들보다 우월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구도를 하는 것에 정해진 방법은 없지만 무의식 정화, 내면 관찰을 하다 보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습관화됩니다. 자신을 관찰하는 훈련이 반복되다 보면 어떠한 작은 감정이나 생각이 올라와도 즉시 알아차리고 수용의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변화하는 에고와 현실을 관찰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며 그로 인해 계속해서 자신을 관찰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동화되어 그것이 마치 진리인 듯, 진실인 듯 망상하고 고통을 한 겹 더 입습니다. 예를 들어 면접에 5번 떨어진 사람에게 '나같이 쓰레기 같은 인간은 아무 회사에서도 원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생각과 감정은 그 사람의 마음 깊은 속 무의식에서부터 원래 억눌려 있던 것이며, 그 감정과 생각을 느껴줄 수 있도록 5번 면접에서 탈락하는 현실이 창조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영원히 이 빚을 탕감하지 못할 거야.', '아빠는 평생 저렇게 나를 괴롭힐 거야.', '나는 영원히 취업하지 못할 거야.', '나랑 결혼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나는 평생 혼자 있다가 외롭게 죽을 거야.', '나는 평생 가난하게 살 거야.' 등 올라오는 생각을 믿어버리고는 더 깊은 고통에 빠져버립니다. 고통이 일어나면 고통을 느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자신이 자신에게 쏜 두 번째 화살(류시화 시인의 말을 인용)을 맞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일어나는 고통을 관찰자의 눈으로 살펴보며 있는 그대로를 느껴주는 것.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에 동일시되지 않고 지금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여러분을 반복되는 고통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저는 고통스럽지만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마치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 터널은 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딛고 다음 챕터로 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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