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처음 학급 부반장이 되었다. 학교 임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생애 첫 감투를 써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 데 학교 운동회였던 거 같다. 보통 이런 날은 반장, 부반장의 집에서 햄버거나 피자 등의 음식을 쏘곤 했었다.
운동회 전 반장은 나에게 운동회 날 음식을 사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하였다. 난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반장은 당황하면서 알겠다고 했다.
운동회 날 간식시간은 가시방석이었다. 호기롭게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너무도 신경 쓰였다. 내 앞에 놓인 햄버거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반장이 쏜 거라 아는 아이들 중에는 "부반장은 뭐 한 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매일매일 부모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걸러지지도 않은 채 봐왔던 자식의 마음속에 애늙은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엄마에게 말했다.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걔네 엄마들이 안 해도 될 것을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했을 거다'라고 했던 거 같다. 나는 엄마를 속 끓이게 하지 않은 착한 딸이 된 거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괜찮았을까? 괜찮을 수가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도 있는데 그냥 아이 마음속에서 단정 지어버리고는 손 내미는 행동조차 하지 못한다. 부모가 힘들어할까 봐.
생각해 보면 매번 그랬다.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순간 부모는 없었다. 이건 걸 두고 자립적이다, 독립적이다라는 그저 허울 좋은 포장일뿐이다.
아이의 울타리는 어른이어야 하는데, 모든 걸 가감 없이 보고 자란 아이는 투정마저 사치일 때가 많다. 과거의 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딸아이가 가여워 꼭 안아주었을 거 같다. 그리고 "너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엄마가 너에게 너무 힘든 모습만 보여주었구나.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하는데.. 엄마가 정말 미안해." 하며 꼭 안아줄 거 같다.
늦었지만 보란 듯이 내 아이의 학급에 음료수라도 쏠 거 같다. 내 자식 어깨 좀 펴라고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