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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니 Dec 20. 2023

어른 아이

애늙은이로 자란 아이

 고2 때 처음 학급 부반장이 되었다. 학교 임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생애 첫 감투를 써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 데 학교 운동회였던 거 같다. 보통 이런 날은 반장, 부반장의 집에서 햄버거나 피자 등의 음식을 쏘곤 했었다.


 운동회 전 반장은 나에게 운동회 날 음식을 사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하였다. 난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반장은 당황하면서 알겠다고 했다.


 운동회 날 간식시간은 가시방석이었다. 호기롭게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 너무도 신경 쓰였다. 내 앞에 놓인 햄버거를 먹는 것도 고역이었다. 반장이 쏜 거라 아는 아이들 중에는 "부반장은 뭐 한 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매일매일 부모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걸러지지도 않은 채 봐왔던 자식의 마음속에 애늙은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엄마에게 말했다.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걔네 엄마들이 안 해도 것을 선생님들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했을 거다'라고 했던 같다. 나는 엄마를 속 끓이게 하지 않은 착한 딸이 된 거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괜찮았을까? 괜찮을 수가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도 있는데 그냥 아이 마음속에서 단정 지어버리고는 내미는 행동조차 하지 못한다. 부모가 힘들어할까 봐.


  생각해 보면 매번 그랬다. 선택과 결정필요한 순간 부모는 없었다. 이건 두고 자립적이다, 독립적이다라는 그저 허울 좋은 포장일뿐이다.


 아이의 울타리는 어른이어야 하는데, 모든 걸 가감 없이 보고 자란 아이는 투정마저 사치일 때가 많다. 과거의 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다시 차오른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딸아이가 가여워 꼭 안아주었을 거 같다. 그리고 "너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엄마가 너에게 너무 힘든 모습만 보여주었구나.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하는데.. 엄마가 정말 미안해." 하며 꼭 안아줄 거 같다.


 늦었지만 보란 듯이 내 아이의 학급에 음료수라도 쏠 거 같다.  내 자식 어깨 좀 펴라고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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