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다는 것의 진짜 의미란..
오늘도 비움..
물건만 비우는 게 아니다. 마음도 비우고 스타일도 비워내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느리게 살아보는 것도 비움 중 하나이다.
세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는 항상 어수선하고 많은 짐들로 넘쳐난다. 세 개의 방과 널찍한 확장형 거실을 가진 32평의 아파트는 결코 작은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인원수에 맞게 각자의 물건은 꼭 소유해야 되는 것처럼 많은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빈틈없이 나열되고 있었다. 식구가 많은 만큼 물건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감수하고 지냈었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자 큰 짐들, 예를 들어 아기 침대, 쏘서, 점퍼루, 기저귀 함, 붕붕카 등 을 하나씩 처분해 가자 불현듯 생긴 집안의 빈 공간들에 조금씩 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잠시 빈 공간들은 다시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졌고 어느새 다시 물건 나열에 충실한 거실이 되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물건더미에 40평대 집을 알아보기도 하고, 이 집을 처분하고 전세로 가면 갈 만하다는 둥, 어차피 아이들도 자기 방이 한 개씩 있어야 한다는 둥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지 뭔가 더 쾌적하고 널찍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있었고 어떻게 하면 이 집을 더 넓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많은 짐을 정리하고 집안 환경을 바꾸는 게 혼자의 힘으로 버거운 부분이었다. 그 당시 둘째 아이들이 두 돌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청소해 주시는 이모님을 이용했었는데 이모님 오시는 날을 정리하는 날로 정했다. 정리에 필수불가결한 부분은 항상 청소였기에 정리를 하면서 청소로 마무리하는 것이 여간 중노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모님이 오시는 날은 내가 묵은 짐을 정리하면 청소를 맡기는 것으로 집안 정리가 시작되었다. 이모님이 오시지 않는 날은 많은 짐을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집안 환경을 바꾸었고, 주말에는 주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물건들도 처분했다. 옷장 속 옷을 정말 많이 버렸는데 안방에 있던 장롱 세 짝 중 두 짝을 버릴 수 있었을 때는 정말 안방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우리는 안방에 12자짜리 장롱을 사용함에도 작은 방을 드레스룸으로 사용할 정도로 옷이 많았는데, 사실 장기 육아휴직 중인 지금은 입던 옷만 입던 터라 옷을 많이 정리하게 되면서 드레스룸을 아이들 베드룸으로 바꿔버렸고, 안방 안에 작은 드레스룸과 서랍장 2개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차츰 미니멀까지는 아니지만 비움의 기쁨을 몸소 느끼고 있던 차에, 신미경 작가님의 '오늘도 비움'이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을 보면 보통 짐 버리기, 입는 옷가지 가짓수 정하기, 사지 않기 등 보통 물건들에 대한 정리와 비움에 대한 내용이 많았는데 그동안의 나는 많이 비워냈기 때문에 이런 내용보다는 좀 더 내 마음의 내실을 정돈할 수 있는 내용이 책이 필요로 했다.
비운다는 건 어쩌면 몰랐던 나에 대한 정립을 확실히 하게끔 도움을 주는 일련의 행동인 거 같다. 내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차림새, 좋아하는 것들이 확실해지면 결코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유행을 좇을 필요가 없으니 새로운 것에 굳이 눈 이 가지 않고 수십 년간 찾아 헤매던 나의 스타일이 이젠 확고해진 것이다.
나는 어떤 나로 보이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니, 옷 차림새는 심플하되 색상은 톤 다운되면 좋겠고, 필요하다면 목걸이나 시계 등으로 포인트를 주고 싶고 편안한 운동화나 낮은 구두를 주로 이용해 활동성에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싶어서 3년간 똑 단발을 유지하고 6개월에 한 번 정도 매직파마를 해주어 빳빳하고 생기 있는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편이라 색조화장은 지양하고 그냥 선크림과 톤업크림으로 피부결만 살려주고 눈썹과 입술 이 외의 치장은 하지 않는다. 화장이 두꺼워질수록 눈매가 매워지며 뻑뻑해지기 때문에 그냥 가볍게 하고 있다.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속도 좀 비워줘야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도 좋아진다는 말은 익히 알고 있지만, 자극적인 음식과 육퇴 후 마시는 맥주의 유혹은 늘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마흔 인 지금 관리의 필요성은 순간순간 매번 느껴진다.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 일단 아침을 먹기로 했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14~16시간 간헐적 단식을 해야 한다 해서 아침을 굶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자면 애 셋 등원시킨 후 에너지 소모 없이 가만히만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삶은 달걀에 토마토나 사과 등 간단하게 배를 채운다.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하니 공복감도 사라지고 배고파서 허겁지겁 점심을 먹지 않아 좋았다.
지금껏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어느 정도 정리하면 지낸 것 같다. 물론 물건이 빽빽이 박힌 티브이 서랍장과 냉장고 정리가 남긴 했지만 서두르고 싶진 않다. 느림의 미학이라고까지 거창할 건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비워가는 여유로운 삶도 비워가는 과정 중에 하나라 여기고 서두르고 싶지 않다. 다만 자칫 쉽게 늘어날 수 있는 물건들을 조금씩 경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