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사춘기 아이와 자라는 이야기
방과후에서 온 B가 기분이 안좋아서 들어왔다.
"엄마는 붕어빵에 팥든 게 좋아?슈크림든 게 좋아?"
"엄만 팥든 게 좋아.뭐니뭐니해도 클래식한 게 최고지"
다음말이 없어 곁눈질로 슬쩍 보니 B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다.내가 뭐.....잘못 말했나?
"ㅇㅇ랑 애들이 슈크림 든 붕어빵먹는다고 놀렸어........."
B의 동그란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보고 있자니 내 마음에도 슬픔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가볍게 넘어갈 거 같지는 않다 싶어 저녁상차리기를 물리고 B의 맞은편 식탁의자에 앉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슈크림 붕어빵을 집어든 B와 동생 입장에선 같이 갔던 나머지아이들이 디스를 한 것이었다.저걸 왜 먹냐부터 난 저걸 먹고 우웩 토한 적 있다까지.개인의 취향이기에 비난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아직 아이들이라 그런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 같다.그저 자신의 생각,경험을 남배려할 새도 없이 말하는 것이었을 뿐.거기다 난 물색없이 팥든 붕어빵이 좋다고 해버렸으니 이를 어째.
B또래 아이들에게 대거리는 중요하다.대거리에서 밀리면 말싸움에서 진 것이기에 내내 분하다.이렇게 말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후회한다.그런 면에서보면 이불킥하는 어른들과도 비슷한 것 같다.
B와 동생은 그 숫자로도 열세인 데다 하필 동생이 같이 거들어 싸우는 성격이 아니었다.B혼자 나머지아이들의 협공을 막아내야했던 것이다.먼저 말한 아이 상대로 대거리를 하니 다른 아이가 편들어 한마디 거들고, 거기에 대거리하면 또다른 아이가 끼어들어 상대편을 들었던 것이다.분에 찰 만 했겠다 싶었다.지기싫어하고 주도하길 좋아하는 B성격에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이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었다.의견이 갈렸는데 상대의 주장을 확실히 깨지 못했고 하필 상대방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두어명 더 있어서 말빨에서 밀렸던 적이 있었다.상대가 나빠서도 아니고 상황상 묘하게 기분나쁘게 전개되는 그런 일이라고나 할까.어른이라서 말은 못했지만 속으론 쓸데없이 불쾌했다.나의 쪼잔한 성정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감정의 옳고 그름이 어디있겠냐만 그때의 내 감정은 나에게만은 옳은 것이었다..
응징을 했어야했는데 밖이라 그러질 못했다고 B는 내내 분해 했다.응징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짚어주고 참은 건 진짜 잘한 거라고 추켜주었다.좀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버럭 성질을 낸다.뭘 잘한 거냐고.나는 이렇게 고통받는데 걔들은 그러질 않지 않냐고.왜 나만 그래야 하는거냐고 울면서 소리친다.
음......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육아경력이 좀 된 엄마도 당황스러웠다.
6개월아기일 적부터 한번 울때 1시간이 넘게 우는 B다.그래서 잘 울지 않는 B가 울면 긴장이 된다.우선 하던 일을 멈추어야한다.그러지않으면 엄마는 내가 우는 걸 가볍게 생각하는 거냐고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그러면 시간은 더 길어진다.이번에도 B는 한시간을 내리 울었다.와중에 S가 말을 걸어 그 말에 답을 해주면 영락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엄마한테 이게 별거 아닌 거냐고,집중하지 않는다고.중간에 내가 말을 할라치면 말자르지말라고 꾸짖었다.이쯤되니 B와 대치했던 녀석들이 슬쩍 미운 생각이 들었다.나까지 타격이 오게 되었으니.
양껏 울어재끼고 분을 뿜어낸 B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고 한참 뒤 말간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성질을 있는 대로 낸 다음에 하던 "엄마 미안해.."사과는 없었다.딱히 사과할 일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강한 빛을 쏘아대던 눈은 이미 독기가 빠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안도가 되었다.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감정이 전보다 더 과하게,자주 표출되는 B를 보면서 안정된 저 상태가 얼마나 갈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B에게 꼰대라고 놀린다.말자르지말라.자기말에 동조를 안하고 내 의견을 말하면 따지지말라.뭘 가르쳐주려고 하면 "나도 알아" 툭 삐져버린다.자기가 가르쳐주는 말은 끝까지 "아 그렇구나"하며 듣고 있어 줘야하는 영락없는 꼰대다.자존심이 쎈 녀석이라 더 그러긴 한데 자존감은 괜찮은 건지 간혹 생각한다.
이번에도 잠자리누운 B에게 "어유 이 꼰대"하며 볼을 잡아댕겼다.
"이이잉 하지마!"그러면서 싫지 않은지 귀엽게 뿌리치는 우리집 꼰대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