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해외 취업의 시작, 슬로바키아도 유럽이잖아?
난 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오게 되었나? 체코,슬로박어과 학생도 아니었던 내가.
한국에서 4년제 경영학과 재학 중에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지냈으며, 스페인에서 짧게 어학연수도 했다. 미국에서 인턴쉽도 했다. 슬로바키아는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무관심했던 국가에 불구했다.
그런데 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미술, 음악 시간에 배우는 작품, 클래식 등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역사적인 오케스트라 홀에서 전율을 느끼고 싶다는 문화적 경험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친구들이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 교환 학생을 가기를 바랄 때, 나는 헬싱키로 지원했다. 특별히 핀란드, 헬싱키를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에서 자매 협정을 맺은 학교가 헬싱키 하나뿐이라서, 그리고 "유럽이니까"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렇게 유럽 교환 학생, 일명 '에라스뮈스'로 1년을 지내면서 전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지내게 되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이며,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등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국가에서 온 친구들까지.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삶에 대한 태도는 비슷했다.
그 누구도 일을 위해 본인 자신을 희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요도 하지 않는다.
일은 수단일 뿐이지, 삶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
겉으로 보이는 유럽의 풍요로운 문화, 역사 유산에 이끌려 유럽을 오게 되었다면, 교환 학생 생활 1년 후,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 가, 성인이 된 후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의 삶이 최고인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워라밸이 부러웠고, 여유롭게 삶을 즐기는 모습, 그 처음 보는 광경에 매료되었다.
스페인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화이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내가 물었다.
나 - 요새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뭐야?
스페인 친구 - 지금은 새 프로그램은 없어, 여름휴가철이잖아. 저거 다 재방송이야
나 - 아니, 티브이도 쉰단 말이야?
그랬던 것이다. 8월엔 모두가 휴가를 가서 많은 TV 프로그램들이 재방송이라는 것.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교 마지막 학년이 되어, 동기들이 하나둘씩 공채를 통해 취업을 하고, 다들 자기소개서에, 면접 준비에 바쁠 때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좁디좁은 해외- 그것도 '유럽'만- 취업의 문을 한국 국적자, 무경력의 신입으로 들어가겠다고 무대뽀로 문을 두드렸던 나였다. 그런데 하필, 가장 가고 싶었던 스페인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청년 실업률이 50%가 육박했고, 자국 대졸자도 취업을 못하는 판에, 비 유럽인으로서의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던 차에, 한국 무역협회에서 주최한 해외 인턴십에 참가하여 알게 된 네트워크를 통해서 슬로바키아에 위치한 한국 회사 법인에서 세일즈팀에 한국인 직원 "현채"(현지 채용의 줄임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로바키아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요 국가로는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가 있고, 유럽연합 국가고, 유로도 쓰네? 그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큰 고민 없이 지원했다.
그래도 "유럽이니까"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내가 헬싱키에 교환 학생을 지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양의 삶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며,
눈에 보이는, 그리고 보이는 행복을 좇는데 열을 올리며,
타인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기 바쁘나, 정작 본인에 대한 성찰엔 무색한,
어떤 행위에 대한 '강요'가 '사회적 규범'이라는 그늘 아래 당연시 허용되는,
이런 문화를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게 나는 유럽에 오게 되었다.
비 유럽인으로서, (우리가 왜 너를 고용해야 하지?)
기술, 전문직도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널리 퍼진 경영학과를 갓 졸업한 한국인으로서,
원하는 국가에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취업을 고려해 볼 수 있었으나,
이미 학자금 대출을 등에 업고 있는 대졸자로서,
슬로바키아에 위치한 한국 회사에 취업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유럽 회사에서 유럽 사람처럼 일할 거야!라고 다짐했던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서 일하는 것만 아니면 돼. 나 자신과 타협을 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20대의 어린 반감을 가진 채 도피성 해외 취업을, 직장인으로서, 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