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상자를 열다 "악!" 소리를 지르며 나동그라진 나에게 짝꿍이 다가왔다.
"떡이네?"
"그냥 떡이 아니야 이건. ‘영양떡’이야.“
엄마가 종종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영양떡을 보내준다는 사연을 몇 번 들었던 짝궁은 실제로 그 광경을 목격하자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좌절하는 나를 바라봤다.
엄마, 나 영양떡은 안 먹는다니까 왜, 또, 보냈어.
그냥 냉동실에 뒀다 먹어. 배고플 땐 그거 하나가 아쉽다니까?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영양떡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나는 말랑한 인절미나 달콤한 팥시루떡을 좋아하고 콩, 완두, 대추 고물이 얹힌 이 찰떡은 내 입맛이 아니었다. 엄마가 자주 보내는 품목인 김치나 다른 반찬도 마찬가지다. 카레 먹을 때 겨우 한 젓가락 집어먹는 김치나 큰 반찬 통을 가득 채운 장조림. 이것들은 내 작은 냉장고 한 귀퉁이를 점령하고, 결국은 상해버려 버리기엔 죄책감을 심어주고 보관하기도 난감한 짐이 되곤 했다.
“엄마는 왜 꼭 내가 보내지 말라는 것만 보내?”
원하는 역할은 아니었다. 나는 반찬 챙겨주는 엄마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돼 버린다. '엄마한테 받지 않기'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는데 엄마에게 아무것도 챙기지 말라는 단순한 거절은 하기 쉽지 않다. 원하지 않는 타인의 호의는 폭력과도 같다고 하는데, 나는 이걸 폭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능력이 없으며 ‘너와 내가 타인이냐 나는 너를 낳아준 엄마다.’ 라는 말은 더욱이 받아칠 의지가 없다.
엄마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자식의 문신같은 거.
엄마는 내 손을, 팔뚝을, 드러난 발목을 볼 때마다 성호를 그으며 괴로워했다.
“어른들 만나는데 어떻게 그러고 가니.” 명절에 집에 내려가면 친척들 보기 창피하므로 최소 노쇠하신 할머니 눈에는 안 띄었으면 하는 불편함을 강력 표현. 지난 설 가족 모임에서 장갑을 꼈을 때 묘하게 부드러워지는 엄마의 시선에 안락함을 느껴서인지 나는 겨울이 되면 자진해서 장갑 차림을 하곤 했다. 엄마에게 자식의 타투란 눈에 보였을 때 심기를 무척이나 거슬리게 하는 것. 그럼, 장갑을 끼면 괜찮다는 말인가? 내 타투는 그 수가 많을 뿐 크기는 작은데 대왕 코끼리 두 마리를 등짝에 새긴 동생은 왜 자유롭단 말인가? 타투는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 장갑을 꼈다고 편안해지는 엄마의 마음을 어처구니없지만 이해하려 했다. 그 이해하는 마음도 얼마 전 있었던 장례식에서 배신감으로 바뀌었지만.
“너 타투 있어서 엄청 보기 싫다고 속 썩는다고 그러더라~”
친척들이 다 모인 장례식에 엄마와 나는 하루 차이로 따로 조문을 가게 되었고, 오랜만에 본 외숙모께서 먼저 다녀간 엄마와 했던 얘기를 친근하게 풀어주시는 거다. 외숙모와 그 자리에 있었던 사촌의 뉘앙스로 추측해 보건데 엄마는 절대 위로를 받고자 내 타투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장성한 딸의 뒷담을 하며 친척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것이다. 어디 말하기도 부끄럽다며 타투를 당장 퇴마할 기세처럼 대하던 엄마가 이렇게 선수를 친다구? 갸우뚱하던 찰나 나는 곧 엄마의 의중을 파악했다.
오호라, 딸이 동성연애를 한다니까 이거야말로 친척 간에 말도 못 꺼낼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타투쯤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구나. 이것은 마치 심리학책에서 읽었던, '엄마아빠, 나 임신했어요'로 편지를 시작해 사실은 임신은 거짓말이고 이번 학기 낙제를 했을 뿐이라는 사실로 부모님을 안심시키라는 팁을 본 것과 같은, 비극적인 유머였다. 엄마에게 타투는, 더 큰 문제가 생기자 기존의 문제는 더는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경감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속내를 간파한 것 같아 우쭐했다.
사실은 별로 괴롭지 않은 것이로군. 농담할 정도면 엄마 살 만 하구나. 나를 죽이고 본인도 죽을 것 마냥, 그렇게 본인은 버틸 수 없을 것처럼 혐오감을 드러내던 엄마가 사실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좋은 말씀이니 한 번 들어봐“. 엄마가 보낸 문자 링크에는 대략 동성애하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당사자는 몹쓸 병에 걸려 죽는다스러운 내용의(썸네일로만 추측했다) 아무개 목사의 영상이 들어있다. 단연코 내가 죽지 않으려면 엄마의 호의를 끊어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명절에 얌전히 장갑을 끼고 엄마와 동행한다. 아직 누구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에 우선은 현실적인 안전장치를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 고로 여자가 여자 사귀는 거보다 더 심한 다음 단계는 무얼까 나는 생존의 관점에서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