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가 있는 우리집 막내 원이가 다니는 복지관은 평일 4시에 일과를 마친다. 장애인 활동 도우미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원이와 집에서 7시까지 손발을 씻기고 돌봐준다. 평소에는 부모님이 원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엄마가 원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원이의 입술은 살이 뭉개져 있는데 원이가 깜짝깜짝 놀라 경련할 때 입술을 깨물기도 하기 때문이다. 밥 먹다 숟가락을 깨물 때도 있어서 앞쪽이 좁아지는 숟가락 끝에 음식을 올려서 입에 얼른 넣었다 빼야 한다.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 있는 날도 꽤 많다. 매 끼니와 물을 먹을 때마다 원이 윗옷에 받쳐준 가제 수건이 거의 젖어버린다. 턱받이를 하루에 10개 이상은 갈아줘야 깨끗하게 유지된다. 옷도 마찬가지다. 원이는 치약을 못 뱉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의 치약으로 이를 닦아주고 숟가락으로 입을 헹구고 옷을 갈아입히면 자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원이를 데리고 화장실이나 식탁에 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바닥에서 먹이고 씻기고 재운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바로 바로 치우는 게 아니라면 정리할 것들이 금방 산더미가 된다.
평소 원이는 불을 끄고 등을 토닥이며 잠을 재워줘야 하고 자다가 작은 소리만 들어도 놀라 눈을 뜬다. 노래를 불러주거나 말을 걸어서 백색 소음을 만들어 주면 잠이 드는데 운이 좋으면 몇 시간씩 곯아떨어지지만 한밤중에도 서너 시간에 한 번은 깨서 칭얼거릴 때가 많다. 원이가 태어났을 때 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25년간 육아를 하는 셈이다. 집에 아빠, 나, 둘째 동생이 있지만 다른 식구는 보조할 뿐이다.
꿈
꿈속에서 엄마는 임신한 상태다. “그렇게 됐다.” 부른 배를 받치고 나에게 말한다. 슬픈지 기쁜지 알 수 없는 엄마의 웃는 표정.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나는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꿈인지 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또 아이를 가진다고? 아직 생리를 하나? 피임은 왜 안 하는 거지? 어떻게 키울 작정인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나는 화를 내고 통곡하고 엄마 다리를 붙잡고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키우려 그래? 왜 아빠가 엄마를 임신시키게 놔뒀어? 왜 본인 인생을 생각하지 않았어? 왜 도망가지 않았어? 왜, 왜….’ 엄마는 내게 반응하지 않고 평소처럼 하던 일을 한다. ‘막아야 해.’ 나는 꿈속에서 간절히 바란다. ‘새로 낳는 아이도 장애가 있는 아이면 어떡하지? 그건 안돼, 두려워. 아이를 안 낳으면 되잖아,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내가 다급하게 허우적 거리는 동안 화면이 전환된다. 엄마가 아이를 낳았다. 갓 태어난 아이도 원이처럼 장애가 있다. 나는 놀라서 잠이 깬다.
모든 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면
이제 나는 무의미한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꿈은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이가 빠지는 꿈을 수도 없이 꾸지만 난 상관 안 한다. 똥을 밟고, 변기가 터지고, 똥 천지가 되는 꿈을 아무리 많이 꿔도 현실에서 재물이 들어온 경우는 없으니, 불운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해석의 꿈 또한 거슬리지 않는다. 무슨 꿈을 꾸든지 그건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엄마 임신’ 주제의 두려운 꿈은 꿀 때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피하고 싶긴 하더라도, 아무렴 ‘현실만 할까?’ 싶기도 하다. 도망칠 수 없는 삶. 중증 장애인이 가족 구성원인 삶.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화가 난다. 꿈에서 몇 번이고 고문을 당해도 아침에 깨어나면 시리얼과 커피가 당기지만 빌어먹을 현실을 생각하면 어느 한구석이 얹힌 것처럼 체끼가 사라지질 않는다.
엄마는 원이에게 총 8종이 넘는 영양제를 먹인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갈아서 먹이고, 푸로틴 파우더를
섞어서 먹이고, 원이는 뇌가 건강해지고 각막이 깨끗해진다는 오메가3도 먹는다. 25살이지만 신체 크기
가 5살 정도로 작은 원이의 장기는 흡수력이 안 좋아서 음식을 유동식으로 먹거나 먹는다고 해도 보통 사람의 신체만큼 영양이 전해지진 않는 것이 확실하다. 원이는 아직 25kg 정도다. 원이가 잠을 잘 자지 않으면 수면제를 먹이라는 사람들 말에 엄마는 불같이 화를 낸다. 원이 머리가 길면 관리하기가 힘드니 짧은 머리로 자르는 게 어떠냐는 남들의 말에도. 원이는 매일 아침 머리를 빗고 단정히 고무줄로 조여 매고 예쁜 삔을 꼽는다.
여기 또 다른 무의미한 행위가 있다. 나는 원이에게 뽀뽀를 한다. “언니 왔다!” 하며 깜짝 놀래키기도 한
다. 원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도 제 때 응답하지도 못한다. 몇십 년간 보아 왔지만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 할 수도 있고 매일 다른 기억을 가지고 깨어날 수도 있다. (물론 얘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걸 수도 있고.) 원이는 스스로 앉지도 밥을 먹지도 못하고 깨어나서 불현듯 ‘언니가 보고싶어’ 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혹여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도 나, 동생, 아빠, 엄마는 원이에게 뽀뽀를 하고 장난감을 사 오고 원이를 웃겨주려고 한다. 가족은 원이의 이름을 부르고 울음소리에 뭘 원할지를 알아듣고 때로는 원이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 사랑을 응답했다고도 ‘믿는다’.
‘원이가 죽을 때 가족 중에 누가 제일 잘해줬는지 기억하겠지?’ 아무 의미 없는 내기는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몸부림쳤던 나의 꿈, 그뿐이다.
이 글은 신여성 에세이클럽에서 작성하였고 신여성 작업실 홈페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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