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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May 07. 2019

사촌언니 부부를 만나다!

호칭 파괴를 꿈꾸는 판사 부부와 함께 한 제주도

여기야!



제주공항에 내린 나를 마중 나온 두 사람은 나의 사촌언니와 형부이다. 8살 정도 차이가 나는 사촌언니와 나는 꽤 가까워서 언니가 제주에서 근무하게 된 이후로 종종 놀러 갔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 언니가 혼자 살 때 갔을 적엔 다음날 출장으로 서울을 가게 된 언니 없이 혼자 제주에서 며칠을 놀았다. 두 번째로는 친구와 함께 가서 언니 부부와 저녁을 먹고 친구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언니를 보러 갔더라기 보단 자유롭게 들락날락했다고 해야겠지만. 이번엔 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계획하고 간 것이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형부)?”


“네, 이틀 동안 재밌게 여행해 봐요(처제)!”


고등학생 시절 언니 남자 친구로 처음 만나본 적이 있고 그 뒤로 몇 번 얼굴은 봤지만 형부란 말은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다. 서로를 부를 때 상대 쪽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 짐작한다.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호칭을 신경 쓸 만큼 사이가 가깝지 않은 ‘형부’와도 이번에 함께 다닌다니. 확장된 가족관계를 처음 겪는 내게 신선한 여행이 될 것 같다. 어쩌면 필요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지금 언니 남편이 된 형부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언니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ㅡ 언니 결혼하지 마.


둘 다 첫째 딸. 나의 모든 취향과 성격까지 어린 시절부터 봐온 언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 들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은 사촌언니가 결혼을 한다는 건 나 같은 인간이 결혼을 한다는 말로 들렸다. 속 깊은 이야기는 서로 한 적이 없지만 어디서 나온 감으로 추측하건대 나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인 언니도 결혼제도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친구에게도 못 할 말을 했지만 그 뒤로 변함없이 잘 사는 언니를 볼 수 있었다. 또한 나와 모든 게 비슷하다고 했지만 공부는 지지리도 안 한 나와 달리 언니는 이미 오래전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임용된 판사였다. 나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끈기와 판단력을 가진 언니인 거다.



나의 미안함이 채 가시기 전에 두 사람은 귀엽게도 나름의 여행 계획을 나에게 읊어 주었다. 나와 같이 다닐 걸 생각하고 짠 촘촘한 맛집 위주의 일정을 듣고 있으니 짧은 이틀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며 간단하게 초밥집을 갔다. 법원 근처여서 평소에도 단골인 것 같은 식당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가깝게 마주 앉았다. 호주에 살면서 신나게 새긴 내 몸에 드러난 문신들을 보더니 언니가 “나도 타투하고 싶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해도 돼?” 


평소 “타투하면 부모님(혹은 회사)이 뭐라고 안 해?”라는 말을 들으면 질겁하며 질문한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취급했으면서 나는 속으로 언니를 이단아 취급했다.

“(판사는 꽤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문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야? 그냥 내 타투 보고 맞춰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고 진심이야? 일단 한다고 치더라도 분위기가..#@^) 회사에서 해도 돼?”라고 물은 나는 많은 말을 생략하고 그냥 웃었다. 타투를 하고 싶다고 말한 건 형부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타투를 위주로 관심을 가졌지만 두 사람은 꽤 구체적으로 생각한 도안도 있었다. 연어 아보카도 덮밥이 나오자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이게 언니 최애 메뉴야?”


오. 최애.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인싸’ 같은 흔한 말도 얼마 전에 알게 된 나와,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본인들이 인싸라는 말을 안다고 어필하는 두 사람과는 라디오에서 들은 ‘요즘애들 용어’가 화젯거리였다. 내가 자연스럽게 ‘최애’라는 단어를 말하자 두 사람은 신용어를 사용하는 걸 실제로 들었다는 설렘으로 들썩였다. 물론 젊은 부부지만 두 사람이 자란 환경과 일하는 환경에서 비롯한 특유의 모범적인 분위기가 신세대와 소통을 추구하는 X세대의 느낌이 나서 나는 재밌어했다. 사실 언니 눈에는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사촌동생인 내가 아직도 학생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나도 이제 20대 후반을 넘었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는데 곧 길게 휴가를 떠나 식당을 닫는다는 사장님 부부가 언니와 형부에게 악수를 부탁했다. “언제 판사님과 악수를 해보겠어요?” 존경이 담긴 사장님 부부의 미소를 보니 나는 신기하면서도 대신 뿌듯함이 느껴졌다. 곧 뉴욕으로 연수를 가는 언니 부부도 제주 생활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다. 연수에 들뜬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는 거 같았는데, 형부는 나름 뉴요커 스타일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고 했고 두 사람이 뉴욕에서 쓰고 싶은 영어 이름을 정하는 것도 고민 중 하나였다.


“나는 영어 이름으로 내 이름 따서 미 Mi로 하려고.”

“미? 그럼 I am me가 되잖아!”


나는 다른 이름도 추천해 가며 애썼고, 해맑은 언니의 계획을 이미 몇 번 들었을 형부는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티가 났지만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외국은 자유롭게 부르니까 정말 편할 거 같아. 다 이름 부르고.”

“나도 부장판사 되면 호칭문화 바꿀 거야. 다 영어 이름으로 부르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형부와 진지하게 듣는 언니는 나에게 즐거운 충격을 주었다. 호칭 파괴를 꿈꾸는 판사와 그들의 오랜 꿈 타투. 이 사람들 뭔가 하찮은 거 같기도 하고...







구좌읍에 있는 전망 좋은 카페에 가서 우리는 음료와 케이크를 시켰다. 다음 코스는 장어라면서, 이거 다 괜찮을까? 이미 배부르게 먹고 왔는데도 우리는 여기를 오면 꼭 먹어야 하는 각각의 메뉴를 시켰다. 나쁠 건 없지.


카페에서 언니는 책을 보고 형부는 신문을 읽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뽑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보았던 책의 장이 좋아서 돌아와서 헌책을 사게 된 행운도 얻었지만. 나는 카페 안을 돌아다니며 자는 고양이를 관찰하고 풍경도 감상했다.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사진도 찍어 보냈다. 책 읽는 사람들도 많은 조용한 카페였지만 곧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즈음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건 공통된 우리의 성향인가 보다.



카페를 나와선 수목원을 산책하러 갔다. 셋 다 열심히 걸었는데 언니와 나를 뒤에 두고 형부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언니랑은 제주살이 얘기도 하고, 호주 얘기도 했다. 외모 얘기도 나왔다. “나는 턱이 사각이어서 앞머리를 살짝 내려.” “언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 나도 외모에 대한 집착이 심했는데 호주에 가니까 다들 단점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당당하게 다니는 게 보기 좋더라.”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였다. 제주에 올 때 두 달 전에 같이 왔던 친구에게 다시 제주를 간다고 말했다. 이 친구는 이미 언니의 팬이었다. 사촌언니인걸 떠나서 내가 ‘판사라니! 판사님의 일상은 어떨까?’ 따위로 생각하는 것 같이 친구도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된 것이다.


내가 놀리는 말로 하찮아 보이는 부부라고 했지만 그 바탕에는 애정과 존경이 깔려있다. 두 사람과 함께 나눈 대화를 돌이켜 보아도 그렇다. 언니나 형부가 “남자 친구 있어?” “무슨 일해?” 같은 질문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지만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끊임이 없다. 내 동생은 두 사람이 교양이 넘친다고 했다.


“아이 계획은 있어?” 같은 건 나도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 부부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인 마음인 건가?) 면밀히 관찰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을 들여다보면 살금살금 걷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닮았다. 이미 일한 지 7-8년 차가 된 언니지만 내 눈엔 아직도 학생 같다. 나에게 젝스키스를 좋아해야 한다며 음반을 틀어주고 춤도 따라 춰보이던 언니... 눈을 빛내며 말 하지만 차분해 보이는 형부도 마찬가지다. 모양새가 똑같은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집의 느낌이 무척 좋았다.


비혼이라는 가치관을 가졌지만 본인이 가진 틀을 깨기 어려워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결혼의 여러 면을 보게 해 준 언니 부부는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꽉 채운 이틀 동안 서로 기념사진 한 장 찍지 않은 걸 보면 언니네 부부가 나도 ‘어딘가는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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