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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Mar 08. 2020

HYUKOH [사랑으로] (1)

New born : 비움으로 완성하다

HYUKOH - 사랑으로 (2020)


아는 사람만 아는 밴드, 나만 알고 싶은 밴드, 무한도전 나온 밴드, <TOMBOY>. HYUKOH가 성장해 온 길은 표면적으로 매우 정석적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 오버그라운드의 변두리에서 가장 중심으로.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이 정석적인 코스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꽤 낯설다. 일단 한국에서 밴드가 크게 유명해지고 인기를 누리는 것 자체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또 한국에서 뮤지션이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정말 어려운 길도 있고 아주 쉬운 길도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고 나도 그중 한 명이지만, 그 쉬운 길이 뮤지션 입장에서 상당히 큰 유혹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HYUKOH는 너무나도 착실하게 음악만으로 모든 것을 이뤄내고 있어서, 그리고 역사상 가장 파급력이 컸던 예능에 나온 적이 있어서, 그들이 밟아온 과정이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정말 어려운 길을 택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인디 밴드에서 모든 사람이 떼창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든 밴드가 됐다. 유명세는 매우 점진적으로 커졌고, 다른 편법 없이 모든 과정에서 오직 음악으로 인정받았으며,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가 됐다.



HYUKOH - [23] (2017) / <TOMBOY>가 수록된 앨범이다


이는 <TOMBOY>가 수록된 [23]까지의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HYUKOH의 다음 챕터가 궁금해진다. 높은 위치에 오른 이들에게 '다음'은 무엇일까? 두 가지가 떠오른다. 유지 그리고 도전.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와 [사랑으로]로 이어지는 이들의 행보는 정말 새롭다. 이는 분명 도전이다.


무한도전 출연을 통해 생긴 유명세가 [23]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23]은 매우 팝(Pop)스러운 앨범이었다. [20]과 [22]에서 보여준 모습보다 훨씬 대중적이었다. 한국어 가사가 가장 많이 쓰인 앨범이었고, 메시지의 전달방식도 전과 달리 매우 직접적이었다. 확실한 메인 멜로디를 통해 각 곡이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었고, 아낌없이 소리를 쌓아 풍성한 잔칫상을 차렸다. 사람들은 이 앨범을 맘껏 즐겼고, HYUKOH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HYUKOH -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2018)


그다음 앨범은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 처음으로 숫자 다음 부제가 붙은 앨범이다. 겉으로는 큰 틀의 자기복제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23] 이후의 음악적인 고민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형식상의 변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섞음'이다. 초기 작품과 [23]의 특징을 섞은 듯한 인상을 준다. 초기 작품은 <Graduation>으로, [23]은 <LOVE YA!>로 경향성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두 가지 경향성은 하나의 앨범에서 무심하게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과학자가 실험하듯 조심스럽게 뒤섞인다. 예컨대 <LOVE YA!>의 벌스에선 초기 작품의 긴 스토리텔링을 사용하고, 코러스에선 [23]처럼 명확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식이다.

두 번째 주목할만한 변화는 '비움'이다. 두 번째 트랙 <하늘나라>는 HYUKOH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짧은 트랙이지만, 가장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움'은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아니지만, [사랑으로]에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된다.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를 일종의 실험이자 도전의 첫 단계라고 본다면 이 앨범에서 '비움'을 처음 시도했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내용상의 진보는 훨씬 과감하게 이루어진다. <하늘나라>와 <Gang Gang Schiele>에서 HYUKOH는 음악에 조금 더 가시적으로 자신들의 철학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이는 HYUKOH가 단순히 인기 있는 밴드에서 마치 U2처럼 위대한 밴드로 나아가려는 첫 발을 뗀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자신들이 충분히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는 [23]과 비교해 흥행 면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다. 하지만 [사랑으로]가 발매된 현시점에서 이 작품을 재평가해보자면 [23]과 [사랑으로]의 연결고리이자 과도기로써,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시나 HYUKOH의 방식처럼, 점진적이다.



HYUKOH - Help @ HYUKOH 2020 WORLD TOUR [through love]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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