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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Mar 08. 2020

HYUKOH [사랑으로] (2)

New born : 비움으로 완성하다

HYUKOH - 사랑으로 (2020)



1. 사랑으로


[사랑으로]는 [20], [22], [23]으로 이어진 청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서 보여준 새로운 시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완성해나가는 앨범이다.


HYUKOH는 이번 앨범 [사랑으로]의 이름에 20, 22, 23, 24로 이어진 숫자를 처음으로 뺐다. 과도기적 앨범인 [24 :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서 숫자와 글로 쓴 부제를 함께 사용한 후 이번 앨범에서 숫자를 완전히 삭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어로 붙인 최초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데, 'through'라는 단어로 명시하긴 했지만, 한국어 '으로'에서 '사랑을 통해(through)'와 '사랑을 향해(to)'를 동시에 담아낸 의미로 읽어내는 것도 꽤 즐거운 감상방법이다. (앨범 러닝타임을 26분 26초로 맞추어 숫자를 이용한 컨셉을 간접적으로 유지한 건 흥미로운 이스터에그다.)


터너상 수상자 볼프강 틸만스의 [Osterwaldstrasse]가 앨범 커버로 쓰였다. 갖가지 식물이 함께 자라고 시들어가는 화단에서 한 식물의 줄기를 꽉 붙잡고 자라나는 또 다른 식물의 모습을 담았다. 앨범 소개엔 장석주 시인의 [사랑에 대하여]를 일부 발췌하였다.



[사랑으로] 앨범 소개글

(앨범 소개글 링크)



HYUKOH는 [사랑으로]에 수록된 6곡을 전부 타이틀로 삼았다. 모든 곡이 타이틀이 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고, 리스너로 하여금 모든 곡을 선입견 없이 같은 마음으로 즐겨주었으면 하는 창작자의 마음일 수도 있다. 또한 앨범 전체를 '27분짜리 단일 곡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직접 제시한 감상법을 전곡 타이틀이라는 장치로 가이드하는 것이기도 하다.


커리어 내내 그랬듯 이번 앨범에서도 HYUKOH의 가사는 추상적이다. 특히나 이번 앨범은 각 곡의 내용과 6곡으로 이어지는 전체 서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기에 해석의 여지가 매우 넓다. 제목, 커버, 소개글은 알쏭달쏭한 [사랑으로]를 따라가는 힌트이자, 작품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으로 기능한다. 감히 말하건대, 한 가지라도 빼놓고 감상한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사랑으로]라는 제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사랑으로]는 과정지향적인 앨범이다. 작품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지지했던' HYUKOH는 '음악을 대하고 작업하는 태도에서' 사랑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HYUKOH는 [사랑으로]를 '사랑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따라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고, 앨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그 안에서 HYUKOH가 드러내는 '사랑'을 느껴보는 것도 가능하다. [사랑으로]의 마지막 곡은 <New born>이다. 앨범 전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결말이 된다. 그렇다면 앞의 이야기는 새롭게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이 될 것이다.


(이는 무수한 감상 중 필자 개인이 제시하는 하나의 길이다. 필자의 더 깊숙하고 자세한 해석과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재미도 없고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감상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이다. 그것이 HYUKOH가 주창하는 사랑의 실천방식 중 하나기도 하고.)



2. New born : 비움으로 완성하다



음악 자체에 대해 논해보자면,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무엇보다 미니멀한 아날로그 사운드다. 공감하긴 조금 어렵지만 이는 HYUKOH가 [23]부터 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필요한 것 이외에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모든 악기의 소리를 맛깔나게 살려냈으며 각자의 비중 또한 아주 적절하게 분배되어있다.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곡에 타악기, 피리 등의 실제 악기 소리로 독특한 감성을 더하여 아날로그 사운드와 듣는 재미,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잡았다.


특히 <World of the Forgotten>은 가장 짧은 곡임에도 곡의 이완이 확실하면서 조용하게 터뜨리는 후반부의 전율이 인상적인, 이번 앨범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전작의 <하늘나라>의 경향성을 잇는 듯한데, 두 곡의 내용을 함께 이어 보는 시도도 개인적으로 재밌었다. 마스터링이 큰 일조를 한 것이겠지만, 공간감을 주는 여러 인위적인 효과를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앨범보다 꽉 찬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최근의 투어 공연 유튜브 영상에선 <Gondry> 등의 이전 곡들도 전부 미니멀하게 편곡하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 같이 깔끔하고, 원곡보다 더 큰 울림이 느껴진다. HYUKOH는 비움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감성의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대중과 예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온 HYUKOH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느끼고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거창하고 오만하게 비칠 만큼 직접적으로 강요하는 것 대신 음악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잔잔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랑'이라는 개개인의 실천을 수줍지만 명백하게 제시한다. 이상하게도 뭉클해지는 자연의 영상을 활용한 Preview 영상이나,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을 곡과 묶어 간단하게 제시하는 작은 규모의 뮤직비디오도 감동적이다. 과장된 표현과 다이나믹한 장식들로 표현했다면 메시지의 진심이 드러나는 것을 떠나 제대로 담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자신들의 철학으로 타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의 위치에 오른 HYUKOH가 작품엔 겸손을 담으니 듣는 이가 괜히 뿌듯해진다. 이에 더해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의 발전 방향엔 감상자의 진정성이 담긴 심도 깊은 '사랑'이 중심에 위치한다는 것을 음악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그 일환으로 감상자가 집중과 사색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이 능력에서 이들이 단순한 슈퍼스타에서 진정한 예술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들과 동시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며 비슷한 것을 보고 느낀다는 것, 그것을 통해 어떤 연대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우리도 이런 밴드 있다.




HYUKOH - World of the Forg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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