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03. 09.
음악은 모름지기 낭만적이어야 한다. 사랑 노래라면 특히 그렇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HYUKOH가 [사랑으로]라는 앨범을 통해 같은 주제를 노래했는데, 이 곡이 조금 더 가볍고 즐기기 쉽다. 세기말 브릿팝의 향수가 느껴지는 구성이 진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흐뭇한 마음이 들어 반복해서 듣게 된다. 전성기 더 핀(the finnn)의 청춘찬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아할 거다.
친구들을 불러 소소하고 즐겁게 찍은 뮤직비디오가 귀엽다.
김뜻돌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YEH(예현)이라는 래퍼에게 빠져버린다. 올드스쿨과 lo-fi 감성을 합친 세련된 음악이다. 은근히 유치하고 찌질한 가사지만 구차하진 않다. 괜히 무게 잡고 어렵게 쓴 가사보다 이런 가벼움이 훨씬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뜻돌의 독특한 감성도 고스란히 담겼다.
봄볕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번 봄을 나기엔 이 한 곡이면 충분할 것 같다.
샘플링 때문에 정식으로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
영화 <Her>, 기리보이의 <키보드> 등 인터넷을 위시한 가상현실을 주제로 삼는 작품들은 대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Cyber Holiday (feat. 넉살)>도 마찬가지다. 바쁜 일상 속 맘 놓고 휴가를 떠나기도 어려운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화면 속을 떠다니며 이런저런 공상에 빠지고, 사이버 세계에서 나름대로 작은 휴양을 즐기는 이야기를 담았다.
까데호의 연주는 CHS처럼 나른한 여유로움을 담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넉살은 그 위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비정한 세상, 피 토하는 노래'였나?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처음 썼는지 솔직히 많이 오그라들고 좀 '짜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두통 없는 삶]의 수록곡 <두통 없는 삶>과 <빈 역>에 붙여보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감정을 절제하고 무심한 듯 부르는 사뮈의 노래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그러다 갑자기, 잠깐 움찔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작게 감정을 터뜨리는, <빈 역>의 마지막 "생각은 하지 않을래요" 같은 부분은 어떤 가수가 온 힘을 쥐어짜서 부르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노래 없이 줄글로만 표현해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간직할 시가 되기 충분한 가사와 또다시 소름을 돋게 만드는 기타는 여전하다.
분명 하나의 모티브로 쓴, 하나의 주제를 담은 노래 같은데,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에 맞추어 듣는다. 윤지영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다. 유튜브의 <언젠가 너와 나(feat. 카더가든)> 뮤직비디오 댓글을 보면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떠올리는 사람, 부모님을 생각하는 사람, 사랑과 희생의 공존에 대한 철학을 논하는 사람 등 곡 하나를 두고 온갖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번 <다 지나간 일들을>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음미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음악의 쓸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윤지영이 만들어낸 이 현상으로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