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7. 09. 작성
쏜애플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이야기성이다. 구체적이고 회화적인 한편 잡힐 듯 말 듯 신비롭고 관념적인 가사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미묘한 쏜애플의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과 관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개성과 호소력, 기교를 모두 지닌 프론트맨 윤성현은 대단한 스토리텔러의 기질을 타고났다. 이 매력은 강렬한 이미지의 내용에 낯선 단어를 주입해 새로운 감성을 창조한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을 잊었네]로 시작해 정교한 연주와 더욱 구체적인 묘사를 담아낸 [이상기후]에서 더욱 날카로워져서 지난 EP [서울병]에선 완전한 꽃을 피웠다. 이번 신보 [계몽]은 어떨까?
구성상 지난 정규앨범인 [이상기후]의 형식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귀를 확 사로잡는 <남극> - <시퍼런 봄>의 흐름은 <마술> - <수성의 하루>에서 재현된다. 대중의 귀를 노린 타이틀곡 <2월>이 그 뒤로 이어지는데 그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1년 12개월 중 2월이 지닌 미숙한 이미지를 살려 관계 속에 대입한 스토리가 대단히 신선하고, 언니네 이발관의 [100년 동안의 진심]을 오마주한 가사는 한국 인디음악 리스너들에게 깜짝 선물처럼 다가온다. <물가의 라이온>의 우화적 요소는 <위에서 그러했듯이 아래에서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기린>에선 이미지를 형상화시키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상기후]보다 더 정리된 초반부의 흐름은 분명한 강점이고 동물의 이미지를 후속한 것은 팬 입장에선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몽]의 후반부는 아쉽다. 휘몰아치듯 이야기를 쏟아내는 초반부를 지나 관념성을 내세운 후반부로 넘어가는 흐름은 전작과 유사하나, 곡의 밀도와 집중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을 받았다. <넓은 밤>, <뭍>, <은하>는 <암실>, <베란다>, <아지랑이>에 비해 멜로디나 구성의 개성이 약해 메시지 전달 과정이 어딘가 허전하다. <검은 별>은 <서울>과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고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하지 않았나 싶다. 트랜지션과 곡의 완급이 좋고 마무리로 달려 나가는 윤성현의 고음이 피날레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만, 여운이 <서울>만큼 남진 않는다.
만약 EP [서울병]과 순서를 달리하여 발매했다면 이러한 단점이 두드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을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성은 자신의 개성을 완전하게 꽃 피우는 것과 차분히 정리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쏜애플은 [서울병]에선 전자의 방향을 택했고, [계몽]에선 후자의 방향을 택했다. 화려한 [서울병]이 먼저 나온 순서가 아무래도 [계몽]이 가진 장점을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지도록 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