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에서 "He is Chinese"라는 밈(Meme)이 유행이다. 인터넷 방송 클립 유튜브 등지에서 시작되었는데, 남 보여주기 민망하거나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댓글로 달리곤 한다. 한마디로 '나라 망신'이니까 어디 가서 한국인이라고 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럼 사람이 아니라 내 나라가 부끄럽다면?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마주하는 현실과 결부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다. 정석적인 연주법을 고수하던 시절 스승의 지적에 따라 자유롭고 역동적인 연주법을 갖추게 되었고, 사람 냄새나는 사운드에 어울리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이번 [스피릿선발대]엔 5개의 연주 트랙, 노랫말로 직접 내러티브를 담은 5개의 트랙이 담겼다.
랩퍼 우원재가 피쳐링을 맡은 <이겨내는 것들 (feat. 우원재)>이 가장 눈에 띄고, '히피는 집시였다'가 참여한 <서로를 바라보며 죽여버림 (feat. 히피는 집시였다)>도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레이션으로 곡을 이끌어가는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 (feat. 백현진)>,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가 아주 큰 울림을 준다.
동명의 현대예술 작품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 (feat. 백현진)>은 제3자에게 이미지로서 일시적으로만 소비되는 각종 사회문제에 감상자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인다. 이를 첫 트랙에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인 문제의식을 제고하며 앨범을 시작한다.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에선 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한 전태일 열사의 생전 발언들을 토대로, 그 입장에서 써 내려간 편지 형식의 글을 비장한 감정선을 따라 읊어간다. 노동자의 근로시간과 임금에 대한 조항을 그대로 읽는 부분에선 뭉클함이 느껴지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유명한 구절의 마지막 라인이 주는 충격은 너무 강렬해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다. 과거 연주곡으로 발매됐던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에 전태일 분신사건을 덧댄 곡인데,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자신의 예술과 역사의 힘을 빌려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보면서 김오키가 예술가로서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 글의 초입에서 던진 질문의 대답이 바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이다. 김오키는 동남아시아 빈민국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한민국 기업의 현실을 꼬집는다.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가 과거의 힘을 빌려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면,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는 오늘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행태를 직접 언급하며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까발린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인물의 역사가 있는 나라가 똑같은 문제를 다른 나라에서 답습하고 있는 2019년의 현 실태를 보며 김오키는 한국인이길 거부한다.
'00년대 힙합이 시도했고, 대개 무위로 돌아간 음악의 사회비판이 색소폰을 필두로 한 재즈에서 구현된 것이 흥미롭다. 글로써 (가사보단 글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인다.)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식과, 연주곡으로 그것에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이들을 위한 위로를 전달하는 모습이 어쩐지 긴 머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기인처럼 보이는 김오키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