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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Dec 18. 2019

[코멘터리] 금요일엔




<들어가며>


나는 수능을 두 번이나 보고 대학교에 겨우 들어갔다. 근데 고등학교는 자소서를 쓰고 들어갔다. 살면서 처음 써본 자소서가 고등학교 진학할 때라는 것과 그런 의미 있는 경험을 하고도 대학 갈 때는 우직하게 시험 봐서 들어간 것 모두 흔한 경험은 아니지 싶다.


내가 지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입장도 아니고, 8년 전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쓴 자소서가 이제 와서 어떤 식으로든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다만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론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16살짜리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자소서에 '문화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것이다.


그 당시엔 에디터가 정확히 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굳이 앞에 '문화'라는 사족을 달았겠지. 괜히 덜 알려진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좋아하면서 으스대는 것 말곤 딱히 내세울 것도 없던 평범한 중학생이 한낱 자소서 거리로 포장해본 것일 뿐이다. 남한테 내가 듣는 음악을 알려주고 싶다고. 사람들이 내가 듣는 음악을 좋아해 주고 그런 얘길 나눴으면 좋겠다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여기에 더해서 글로벌이 어쩌고… 한국 문화가 어쩌고… 난리도 아니다. 이제 보니 내 자소서는 '잊고 싶은 나의 수많은 흑역사 리스트'에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한동안 까먹고 살아왔고, 이게 진짜로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문화 에디터'라는 단어가 8년이 지난 이제 와서 보니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지금 내 상황에 맞게 조금 구체적이고 분명히 존재하는 단어로 고쳐보자면 '음악 큐레이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긴 시간 동안 먼 길을 헤매고 난 뒤, 결론적으로는 16살의 나에게서 내 장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유튜브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올리는 작업은 이 생각에서 출발한 작은 실천이다. 방금 확인해보니 27일 동안 올린 동영상이 27개. 조회수가 토탈 1400이 넘었고, 총 재생시간은 40시간을 돌파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내 영상을 900회 넘게 클릭했고 22시간가량을 재생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느낀다. 플레이리스트 좋게 들었다는 지인들의 연락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쓰고 싶지만 그만한 깜냥이 안돼서, 평론도 아니고 리뷰도 아닌 이상한 글이 되어버린 나의 브런치 작품들(?)을 보면서 한동안 좌절감에 빠졌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다시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볍게 쓸만한 글을 생각해보다 내 플레이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어떨까 싶었다.


[코멘터리]라는 단어를 다는 것 자체가 다시 또 무게를 잡는 건가 싶기도 한데, 또 마땅한 단어가 잘 떠오르진 않는다. 에세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사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는 코멘터리를 많이 봐서 그렇다.)


각 곡에 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내 이야기를 적을 생각이다. 왜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생각했는지, 어떻게 이 음악을 알았는지 등 좀 구차한 이야기가 담길 것 같다.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작년에 자소서로 대학에 합격한 동생의 얘기를 들어보니 학교 다니는 3년 간의 장래희망이 동일해야 입학 사정관들이 좋게 봐 준단다.


나는 따지고 보면 8년 전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데 좋게 봐 줄 사람이 없다. 내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라도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




(아래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들으며 글을 읽으세요.)


금요일엔



나는 유튜브도 처음이고 플레이리스트 역시 처음이다. 그래서 너무 힘준 채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구독자가 어느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늘어날지도 모르는데 너무 힘준 인상을 주면 내가 더 민망할 것 같았고, 앞으로의 작업도 쉽게 질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별생각 없이 만드려고 노력했다.


유튜브를 하고 싶단 생각을 갑자기 한 날이 11월 20일 수요일이었고 '오늘 만들어서 내일 밤부터 업로드 시작'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내일은 목요일이다. 내게 목요일 밤이 좋은 유일한 이유는 그다음 날이 금요일이라는 것 밖에 없다. '그럼 목요일 밤에 금요일에 관련된 아주 설레는 음악을 엮어서 금요일을 기다리는 목요일 밤에 듣거나, 넉넉히 잡아서 금요일 당일에 들을 수 있게 하면 괜찮겠는데?'



the cure의 <friday i'm in love> (00:00 ~ 03:34)는 금요일과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내가 왓챠 별점 4점을 준 작품인데 그 정도면 아마 멜로 영화 중에선 꽤 상위권일 것이다. 이상하게 TV에서도 자주 방송해줘서 가장 많이 본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아무튼 내가 '어바웃 타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OST다. 지하철 승강장 씬에서 나오는 <how long will i love you>, 레이첼 맥아담스가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씬에서 나오는 <il Mondo> 등 찰떡같은 음악들이 참 많지만, 처음 만나는 순간보다 전으로 시간을 돌린 돔놀 글리슨이 미술관에서 레이첼 맥아담스를 기다리는 장면에 깔리는 <friday i'm in love>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내게 있어 <friday i'm in love>는 그 떨리면서도 설레는 장면과 완전히 붙어있어서, 노래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제목과 더불어 영화 덕분에 생겨난 설레는 감정이 딱 금요일과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선택했다.



 babeheaven의 <friday sky> (03:35 ~ 07:10)는 가장 마지막으로 고른 곡이다. 다른 세 곡은 이미 알고 있는 곡이었는데 <friday i'm in love>와 <금요일>을 이어 줄 트랙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금요일', 'friday'를 검색한 후 여러 트랙을 들어봤지만, 처음 설정한 '설레는 금요일'이라는 컨셉과 잘 들어맞는 곡이 없었다. 그럴 땐 치트키가 하나 있다. 아마 앞으로도 코멘터리에 자주 등장할 david dean burkhart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이다. 'david dean burkhart friday'라고 검색하니 바로 이 곡이 나타났다.


다른 세 곡과 달리 가사에 직접적으로 friday가 들어가지 않는데,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신나는 느낌의 <friday i'm love>를 지나고 분위기를 훅 꺾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high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뒤의 두 곡이 더 돋보이게 해주는 느낌이다.



몇 년 전에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던 우효의 <금요일(feat. Philtre)> (07:11 ~ 10:40)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번 플레이리스트의 주인공 역할이 됐다. 앞선 두 곡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는 아티스트와 트랙이고, <금요일에 만나요>는 '금요일엔'이라는 플레이리스트 제목에 있어 조금 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효라는 아티스트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테지만 <금요일>을 들어본 사람은 주변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 낯설어서 거부감이 들거나 반대로 너무 뻔해서 별 감흥이 없는 상황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나서 훨씬 더 자주 듣는 곡이 됐다.



<금요일에 만나요 (feat. 장이정 of HISTORY)> (10:41 ~)는 워낙 유명하고 또 좋은 곡이라서 별 고민 없이 플레이리스트에 넣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금요일에 만나요>엔 추억이 하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이 곡이 더 좋아졌다. <금요일에 만나요>는 군 훈련소에서 6주 동안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수료식과 외박을 앞둔 전날 밤 취침 시간에 나온 노래다. 6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건조한 목소리로 "취침"이라는 단어만 외치던 방송에서 이 노래가 나오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렜었다. 원래 잘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 더 쉽게 잠들 수 있었는데 음악 없이 6주를 자면서 그것에 몸이 적응해버린 것인지, 그 다음날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그랬던 건지, <금요일에 만나요>가 너무 설레서 그랬는지 음악을 들으면서도 쉽게 잠들 수 없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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