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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Dec 20. 2019

[코멘터리] 슬픔은 나눠요


(아래 플레이리스트 영상을 들으며 글을 읽으세요.)


슬픔은 나눠요



1.


며칠 전 발매된 사뮈의 <두통 없는 삶>을 들었다. 미발매곡으로 옛날에 올라온 유튜브 라이브 영상은 퀄이 너무 떨어졌는데 음원으로 들어보고 나니, 진짜 좋은 노래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얄개들의 <우리 같이>의 가사를 읽고 오랜만에 얄개들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순민이와 나중에 같이 공연하자는 얘기를 하며 셋리스트에 대해 의논하다 파라솔의 <설교>가 떠올랐다.


세 곡을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들었다. 다른 상황들 속에서 떠오른 세 곡이었지만 이상하게 결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세 곡을 묶어서 들었었고, 그 재생목록을 지우지 않고 있다가 두 번째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날에 우연히 찾게 되어 엮게 되었다. 




2.


평소 무슨 음악을 들을지 고르는 과정은 별로 복잡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이런 음악이 땡기네? / 이 음악을 듣고 있으니까 이거 생각나네? 이거 듣고 이거 들어야지'의 무한 반복이 내 일반적인 청취 과정이다.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짧은 순간의 선후를 따져보자면 순서상 내 마음이 먼저고 거기에 맞는 노래를 고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과정이지만, 문득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상황들 속에서 비슷한 인상의 곡들이 떠오른다면, 그건 오히려 반대로 그 시기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곡들을 듣고 싶어 하는 심리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 났다. 요컨대 내 기분을 대변해주는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음악을 통해 내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미술심리치료사라는 직업도 있으니까 말이다.


심리학을 공부해본 적도 없고, 무의식 같은 게 어느 정도까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느껴볼 수도 없으니 (당연히 무의식이니까) 이게 얼마나 신빙성 있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나름대로 실험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3.


나는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그래서인지 '지금 당장 숨 쉬고 있는' 나에 대한 파악이 좀 무딘 편이다. 그냥 별 탈 없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낸다. 살아가기에 꽤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 작은 동요엔 잠잠하던 기분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큰 파도가 치면 너무나도 쉽고 처참하게 휩쓸리고 만다. 차라리 쨉을 좀 자주 맞더라도 너무 아픈 주먹은 피하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요즘엔 크게 우울하단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만약 우울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라면 어떡하지?'


<두통 없는 삶>, <우리 같이>, <설교>를 한 번에 듣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 내가 위로를 받고 싶은 상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상한 꿈을 많이 꾸긴 했지. 몸이 갑자기 굳기도 하고, 짧지만 자주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이게 우울한 걸 수도 있겠네.'


쨉을 맞았다. 다행이다.




4. 


위로가 되는 음악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완전히 음악에 몰입하게 만듦으로써 우울한 기분을 덮어버리는 음악이 있기도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기분을 달래주는 음악도 있다. 이번에 묶은 세 곡은 또 다른 종류의 위로다.


'슬픔을 나누는 위로'


'너나 나나 비슷한 처지구나'하고 말하는. 조금 거칠지만, 너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확실하게 알려주는 안도가 되는 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지.


슬픔을 나누자. 그리고 오래 살자.




"매일 난 바라지 두통 없는 삶" / 사뮈 <두통 없는 삶> (00:00 ~ 03:26)


"우리 같이 춤추자" / 얄개들 <우리 같이> (03:27 ~ 07:28)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07:30 ~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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