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의 품격

by 벚꽃 리듬

평소 남의 이야기를 즐겨 하는 편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어떻고 스티브 잡스가 어떻고 등등. 그렇게 떠들다 보면 '원 플러스 '으로 나의 삶도 그들과 비슷하게 묶이는 기분이 든다. 간디처럼 살아 본 적도 없고, 애플 같은 대기업을 창업하긴커녕 다닐 깜냥도 안 되면서 괜스레 우쭐해지는 것이다. 야, 너 간디 알아 몰라. 내가 말이야 어? 그 형이랑 어? 인도 카레도 어? 비폭력이 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군가를 욕할 때는 딱히 그 사람과 연결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상관없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며 손쉽게 안도해 버린다. 이를테면 선택적 착시효과라고 할까. 미담으로 시작하든 악담으로 시작하든, 결국은 자기만족의 가상현실에 링크되는 셈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면에는 ‘욕하면서 닮는다’는 무시무시한 악어, 아니 언어가 엄연히 도사리고 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그것은 ‘자신이 욕하는 대로 자신이 욕먹게 되어 있다’는 이빨, 아니 이치를 번뜩이며 호시탐탐 호사가들의 뒷덜미를 노린다.

제대로 물려 본, 아니 울어 본 입장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욕의 주체와 객체의 동질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경험상 “시간 약속 진짜 안 지키네.” 라고 한마디하면 불과 몇.시.간. 뒤엔 내 쪽에서 시간 약속을 못 지켜 쩔쩔매게 되고 “잘못을 했으면 똑바로 사과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라며 잔뜩 훈계를 늘어놓기라도 하면 불과 몇.시.간.뒤…… 갑자기 눈물이…….

더군다나 평소 싫어하던 사람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발견될 때의 충격이란 '자기혐오’의 근거가 되어 주기에도 충분하다. 심하면 살기 싫어질 때도 있을 정도니 말 다 했죠.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누군가를 욕한다는 것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면,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어디서 봤더라). 마찬가지로 함께 어울려 욕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이 나서 혓바닥으로 칼춤을 추는 것도 가능해진다. 더군다나 이 칼춤은 안무 연습 한 번 거치지 않았으면서 군무처럼 손발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마법까지 보여 준다.

언젠가― 저 비난의 강도가, 저 분노의 규모가, 저렇게 마법적인 팀워크로 자신을 덮친다고 상상해 보자. 오싹하지 않나요.


나야 물론 구제할 길 없는 수다쟁이라서 생각 없이 뒷담화에 빠져드는 때도 있다. 그러나 아차 싶을 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애써 들먹이며 슬―쩍 한 발을 빼버린다. 어느 날 어디에선가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나에 대해 수군거릴 때―야, 너 그 자식 알아 몰라. 그놈이 말이야 어? 시간 약속을 어? 그래 놓고 어? 사과도 안 하고 어?―아무쪼록 그중 한 명 정도는 나처럼 한 발짝을 빼고 중도(?)를 지켜 주기 바라면서.


그렇지만 구태여 나 같은 소시민을 욕하며 닮고 싶다는 사람은 없을 같다. 있어 봤자 사회에 유익할 일도 없을 테고. 이왕에 뒷담화를 할 거라면 간디나 잡스 정도는 손님으로 모셔 줘야,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수지가 맞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의 기업가 정신, 기업 내 조직 문화 등에 대해선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다니면서 작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제품을 쓰고 있다. 뭔가 이상한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