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들

by 벚꽃 리듬

미루고 미루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기 전에>라는 책을 대출한 적이 있다. 부제는 '자꾸 미루는 버릇을 이기는 7단계 훈련법'. 도서관에서 우연히 제목을 맞닥뜨리고는 '나를 위한 책인가?' 싶어 뜨끔했으나, 애저녁에 게으름을 습관화한 사람답게 빌려야지 빌려야지 하면서도 을 넘게 멀리한 책이다.


좌우간 나름 용기를 내어 대출했지만(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가까스로 치과에 간 심정이었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이 바빠서, 피곤해서, 다른 재밌는 관심사가 생겨서 등등의 이유로 책을 얌전히 모셔만 두었던 것이다. 안 돼, 이래서는 안돼. 더 이상 미루지 말자! 결심했을 때는 이미 반납예정일이 지난 뒤. 끝끝내 펼쳐 보지도 못한 책을 허겁지겁 반납하고 말았다(병원에 가서 기껏 약을 받아놓고 한 입도 먹지 않았다니).


일단, 저 때문에 이 책을 기다렸을 후속 독자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읽기라도 했다면 정상 참작의 여지라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정도면 병이 중증이지 않을까. 더구나 환자는 낫고 싶어 하기는커녕 좀 더 아프고 싶은 나이롱이다. 지금껏 나는 성실해지고 싶다, 부지런히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러나 '소띠인 주제에 느지막한 오전에 태어나 바쁜 노동과는 거리가 먼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넌 인마 태어난 시간이 글렀어."라고 어머니는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나태할 수밖에 없는 비운의 주인공인 살아왔다.


그런데 어쩌면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었기에 꾸역꾸역 노력하여 간신히 게으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고백하건대, 배수의 진을 치는 비장한 마음으로 서류를 마감일 닥쳐서야 펼쳐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 과정이 마음 편했던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은 열심히 미루면서도 불안은 여지없이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라 불굴의 주인공이었다. 남들이 생긴 대로 살기도 바빠 맹목적으로 성실함이라는 미덕을 좇을 때, 수많은 불편과 부담을 기꺼이 끌어안은 채 타고난 운명에 끝까지 저항하는.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이상하겠죠.




로렌스 블록의 소설 <800만 가지 죽는 방법>에는 '타이밍이 엉망이다. 나는 언제나 하루가 늦거나 1달러가 모자랐다. 이런 일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내 삶의 주제였다.'라고 이야기하는 탐정이 등장한다. 이런 허술한 캐릭터가 탐정 소설의 주인공 탐정이다.


되돌아보면, 시간이든 돈이든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 보장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떻게든 된다니까. 다 방법이 있어요.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용케 쫓겨 나지 않고 살았으니(집에서는 몇 번 쫓겨 났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지 싶다.


휴우.





종국엔 아무런 대책도 없이 결말을 맞이한 때도 있었지만, 알고 보니 마감일이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였다든가, 필요한 돈의 단위를 처음부터 잘못 봤다든가 해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이건 운이 좋다 안 좋다 할 문제는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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