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느냐는 말, 들어 본 적 있으신지. 만약 살면서 저런 말을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다면, 이제껏 사람 구실을 잘 해오셨다는 방증일 터다. 축하드립니다.진심으로.
나의 경우, 불행하게도 전 생애를 통틀어 서너 번은 들어 본 듯싶다. 물론(?) 모두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다.
평소 어머니의 말이라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나인데, 이상하게도 저런 말들은 아주 섬세하게 귀담아듣고 있다. 왜일까. 아마도, 라고 할 것도 없이 상처받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귀한 손님이 찾아와 주시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라 맨발로 뛰쳐 나가 마중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뭐, 응? 언제, 응? 나이를 말이야, 응? 뭐 똥구멍으로, 응?
이러면서 어머니와 드잡이를 하니,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은 티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에휴.
그래서―라고 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지만―이제라도 교양 있게 변명을 해보자면,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는 일이란 어쩌면 ('누워서 떡 먹기'처럼) 그 난이도가 대중 일반에게 심각하게 오인되고 있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아마 굳.이. 뒤에다 뭔가를 넣어 본 분들이라면 알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는데(나는 잘 모르지만), 일단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지않습니까? 들어간다 해도 뒤따르는 고통이란 말 못할 수준일 테고, 굳이 말로 하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비견될것 같다. 아마도.
사정이 이럴진대, 나이를 거꾸로 먹고 싶다며 스스로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불가항력적인 흐름에 떠밀려 뒷걸음질치다보니 똥도 밟고, 냄새도 풍기고, 그러다 또―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욕까지 먹고있는거겠죠. 안 그렇습니까?
살다 보면 나이를 헛먹은 것처럼 보이는 한심한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똥구멍 어쩌구 하면서 화를 돋우기보다는 '아프겠네…' 정도에 안착하는 편이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로울 거라는 의견인데.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근래에 '나이를 똥구멍으로 먹은 어른'이라는 비난을 입에 담은 적이 있다. 반성해야지.
그런데 힘든 시간을 뒤로 보냈든 앞으로 보냈든,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어떤 시기, 한동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봐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다 필요 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또 언젠가는 옆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게 되기도 한다.
현재 내 옆자리엔 (한때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있고, 아내의 배 속엔 (한때 내 몸속에서 출발했던) 나를 닮은 아기가 있다. 모든 건 변하고, 또 돌고 돌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건지도…….
예전엔 분명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에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착해야 할 곳은 저기 멀리에 있고, 가야 할 길이 아직도 한참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미 도착해 있고, 가끔씩 이곳으로부터 멀어졌던 게 아닐까 의심해 본다. 발전적이지도 진취적이지도 않은 발상이라는 것은 물론 알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용도 분명 있다. 나 하나쯤 대열에서 이탈한다고 한들 딱히, 세상에 문제 될 일도 없을 테고. 혹여라도 인생에 대한 도덕적 해이라고 욕 먹는다면 뭐, 할 말은 없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