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크다스는 어려워 a/s

by 벚꽃 리듬

'쿠크다스는 어려워'를 쓰고 나서 한동안 찜찜함에 시달렸다. 내가 쓰려던 건 이런 게 아닌데…… 내가 도착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 때문에. 애초에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 어디에 도착하면 되는지도 몰랐으면서 그렇게 막연한 불만과 불안감을 느꼈다.


예컨대 바스라진 쿠크다스 조각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도 못했고 끈기 있게 집중력을 유지하지도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야 아마도 다종다양하겠지만, 나의 경우 무엇보다 재미 중시하는 편이다. 구체적으로는 관점을 전환하는 즐거움. 쓰이는 글이 쓰는 이의 생각을 벗어나고, 그러면서도 쓰는 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며, 간신히 쓰이는 글의 처지로 되돌려졌다 싶다가도 또다시 툴툴거리기 시작하는 것. 이 반복이 주는 긴장감이야말로 흔치 않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일종의 이라고 할까.


그런데 가끔씩(사실은 자주) 권태기에 빠져 있는 것처럼 글을 쓸 때가 있다. 글감이 툴툴거리고 있어도 귀 기울이지 않고, 피곤하니까 귀찮으니까 적당히 넘어갈 핑계만 찾게 된다. 분명 좋자고 시작한 관계인데 언젠가부터 헤어질 궁리만 하고 있다. 누가 봐도 비극적인 일이죠.




카프카는 한 권의 책이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해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도 잊지 않고 떠올린다. 다 써놓고 보면 도끼는커녕 하나같이 뿅망치도 안 되는 느낌이긴 하지만.


다만 틀을 깬다는 것, 바꿔 말해 대상으로부터 고정관념을 벗겨 내는 작업은 때로는 쿠크다스 포장을 벗기는 것처럼 세심한 과정을 요구한다. 파격이 항상―도끼와 같은―과격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틀에 박힌 마음, 얼어붙은 내면이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쿠크다스는 어렵다. 그리고 적어도 내게는, 글을 쓰는 것도 세상을 사는 것도 직장 상사를 만나는 것도 쿠크다스와 다르지 않다.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으니, 일단 마주친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심하지도 못한 주제에 인내심까지 바닥이라면 결국은 대상 본연의 모습을 훼손하게 되리라. 그 대상이 일이든 직장 상사든 권태기의 연인이든 결국 그렇게 된다.



생각해 보니 한 편의 글은, 얼어붙어 썰렁한 내면에 웃음기를 돌게 하는 뿅망치가 되어도 좋은 같다. 당연하지만, 거기까지의 과정이 쉬우리라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니다 말았던 대학 시절. 웬 교수님이 '사랑이란 상대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젠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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