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내가 발견한 기사로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에서 부모커뮤니티 사업을 벌이는데, 모임당 200만 원을 지원해준다는 기사.
몇 달여 함께 꿈을 주제로 글을 쓰던 워킹맘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 모임에서 하고 있는 일을 부모커뮤니티 사업과 연계하면
지원받으면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한 워킹맘의 꿈은 '미혼모를 돕는 것'이었다.
한 워킹맘의 꿈은 '편지방을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워킹맘의 꿈은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덥석, 이 내용들을 담아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편지방을 열고, 엄마들의 꿈을 찾아 글을 써보는 글쓰기 강좌를 마련하고,
더불어 싱글맘의 꿈을 응원하는 스토리 펀딩을 해보겠다고..!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사업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는 엄마들이 의기투합했다.
어떤 엄마는 사업계획서를 알아보겠다며 컨설팅을 받았고, 어떤 엄마는 부모커뮤니티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를 절절하게 프리젠테이션했다. 어떤 엄마는 사업계획서 작성과 비용처리를 담당했고, 어떤 엄마는 미혼모네트워크와의 유대관계를 만들기 위해 기관을 찾아가서 미팅을 하고 미혼모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엄마는 스토리 펀딩의 리워드를 마련했고, 다른 엄마는 이미지를 만들고 리워드인 에코백을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다. 또 우리들은 미혼모에게 출산축하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우리 이야기를 글로 담기도 했으며, 함께 이런 내용을 팟캐스트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전파했고, 한성백제문화제에 부스를 마련해서 관련 내용을 홍보했다.
평범한 상담소 :엄마도 이젠 달릴 거야 꿈을 찾아서 http://www.podbbang.com/ch/12471?e=22273308
다들 워킹맘이기에, 시간을 내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때론 카톡으로, 때론 전화로, 때론 오밤중에, 때론 번개처럼 긴급 미팅을 가져가며 일을 진행했다. 쉽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더 그랬다. 내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 일 때문에 속앓이도 많이 했고, 때론 나 혼자 동동거리는 것 같아서 괜한 일을 시작했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내 열정이 식어갈 때엔, 다른 이가 열정을 불태웠다. 도망가려는 나를 붙들어 어떻게든 해야 한다며 끌어줬다.
내가 유난히 더 힘들어 한 이유는, 이 프로젝트에 내 꿈이 담겨있지 않아서였다. 미혼모를 돕는 것도 편지방도 나의 꿈은 아니었다. 한참 하다가도, 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에 부딪치면,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여기다가 쏟고 있나. 나를 도와준 엄마들이니 내가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고, 일단 이름을 올려놨으니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 어쨌든 조금씩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니 재미도 있었지만, 일이 힘에 부칠 때 나를 끌어당겨 줄 동력이 없었다. 정작 내가 '원한' 일은 아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편지방과 글쓰기 강좌를 겨우 마무리하고 스토리 펀딩이 잘 진행이 되지 않을 때, 이제 그만 잊고 지내려 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신경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안 되는 거지, 이걸 되게 하려고 아등바등하지는 않겠다고.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조약돌같이 박혀서, 자꾸만 걸리적거렸다. 애초에 내 꿈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이 일을 마무리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스퍼트를 냈다. 엄마들 독려하여 리워드도 만들고 글도 써서, 네이버 공감 펀딩에 오퍼를 했다. 결과는 반려였다. 진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쳤다. 내가 나가떨어지니 다른 엄마가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 스토리 펀딩 문을 두드렸고, 그나마도 프로젝트가 지연됐다 삭제됐다 다시 심사 올리는 과정을 겪은 끝에 1월 30일, 스토리 펀딩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8421#none
그리고 오늘, 목표로 했던 금액을 돌파했다. 스토리 펀딩에 '펀딩 성공'이라고 찍히는 걸 보는 마음이 울컥하다. 돌아보니, 참으로 특별했던 8개월이었다. 애초에 난 미혼모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미혼모를 돕자는 스토리 펀딩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안될 거라고 생각했던 목표금액을 채웠다.
시작은 분명 오지랖이었다. 내 꿈도 아니었던 일을 해보겠다고 사업계획서부터 덥석 썼으니까. 그때만 해도 이런 일들을 하게 될 줄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미혼모네트워크를 만나려고 마라톤을 하고 휴라에 참석하게 될 줄도 몰랐고, 부모커뮤니티 사업 진행을 위해 교육에 참석하고 변경계획서/사업보고서를 써야 하는 줄도 몰랐고, 스토리 펀딩에서 반려당하고 시스템 오류로 잘릴 줄도 몰랐고, 이 일이 계획보다 지연되어 올해 2월에나 성사될 줄도 몰랐다.
지난 시간을 사진으로 살펴보니, 우리 모두, 각자 나름대로 해보려고 참 열심히 뛰었다. 분명, 여럿이 같이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동안 나만 힘든 것 같다고 속상해했는데, 아마 다들 그런 과정을 겪어냈으리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결과가 좋으니 더 기분 좋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결과물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에게 남은 건 부모커뮤니티 사업을 했다는 경력(?)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함께한 엄마들과의 관계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이었다. 어느새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사람들. 이만큼 끈끈한 인연을 만들었다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오지랖이 불러온 고마운 나비효과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