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다되어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저녁을 먹고 애들과 잠깐 놀아주다가,
" 집에 오면 애들 숙제부터 좀 챙겨"
한마디를 남기고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잘 시간이 되도록 나오지 않는다.
나한테 화를 낸 거다. 애가 숙제도 안 해놓고 유튜브 본다고 빠져있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고, 엄마가 돼서 그런 것도 안 챙겼냐는 생각에 나한테 한마디 한 후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거다. 대놓고 버럭 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스멀스멀 불편해진다.
나는 어제 7시에 퇴근해서 시터와 교대한 후, 7시 반까지 큰아이 학습지 하는 동안 자꾸 안기는 막내를 케어하면서 큰애 둘째 학교 알림장을 뒤져서 준비물이라는 줄넘기에 이름 쓰고 줄넘기 사이즈를 맞춰 넣고, 부모님 사인 해오라는 페이지 확인해서 하고, 간식 신청 여부를 묻는 가정통신문에 답해서 달라서 다시 가방에 넣는 일을 했다. 학습지 선생님이 가신 후엔 애들 어르고 달래면서 밥을 먹이고 간식도 먹였다. 그리고 애들 숙제를 챙긴다고 챙겼다. 수학 익힘 몇 쪽 했는지 파악해서 채점하고, 하루 한 장씩 푸는 문제집 풀게 하고 채점하고, 큰애 일기 쓰게 시키고 부모 확인 사인하고, 학교 가방에 필기구도 제대로 안 챙겼길래 연필 깎아 넣게 하는 등 나름대로 했다. 그리고 둘째 씻기고 약 바르고 옷도 입혔다. 중간중간 놀아달라고 달라붙는 막내를 케어하면서.
하란다고 제깍제깍 하면 애들이 아니다. 이거 잠깐 하다가 금세 딴짓하고, 물건은 꺼내면 제자리에 갖다놓질 않고, 도대체 한 번에 쓱 마무리되는 게 없다. 연필 하나 깎아서 가방에 넣는 걸 몇 번을 말해야 듣는지 모른다. 그 와중에 연필 깎은 잔재는 바닥에 홀랑 엎어놓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정신없이 챙긴다고 챙겼는데, 영어 숙제 하나 빼먹었던 거다. 그걸 본 남편은 숙제를 아예 안 챙긴 걸로 생각한 거고.
억울하다. 내가 애들 밥 먹이고 씻기고 준비물이며 다 챙겨놓고 나니 퇴근해서 들어와 놓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안 했다고 한소리 한다. 그리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결국 나는 또 고군분투하며 잘때까지 애들을 혼자 케어했다. 양치질하고 이불 깔고 잘 준비시키고, 물 챙겨주고 막내 쉬하게 시키고 계속 뒹굴대는 아이 다독대면서 애들을 재웠다.
내가 더 많은 일을 하는 거 같은데, 왜 내가 더 잘못한 게 되는 거지? 억울하다. 이건, 싸워도 매한가지다. 남편은 혼자 독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니까. 누군가는 애들을 챙겨야 하는데, 애아빠가 손을 놓았으니 결국 엄마인 내가 해야 하고, 나는 독박 육아로 더 힘들어지기만 한다. 이런 때 특히나 더, 엄마라는 포지션이 참 억울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을 해도 당연하게만 여기니 겨우 본전 찾을 뿐이고, 조금만 잘못해도 타박 맞기 일쑤고, 그렇다고 판을 뒤집어엎기도 어려운 입장이랄까.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너무 억울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날렸다.
' 나 억울해. 어제 이러저러하게 애들 다 챙겼다고.'
남편이 답장한다.
' 응 고생했어. 큰애 들으라고 한 소리야. 할 거 안 하고 딴짓해서. '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해주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생했어'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는 한다. 큰애한테 말하지 않고 나한테 얘기한 걸 보면 엄마인 나에 대한 못마땅한 감정도 없진 않았을 걸로 생각되나, 끝까지 파고들어봐야 좋을 건 없으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억울함을 풀기로 한다. 속상해 할 시간에 애를 한 번 더 챙겨야지. 고달프다. 엄마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