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참으로 발랄하다.
호숫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게 너무 예뻐서 꼭 남겨야 한다며 셀카를 찍고,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이 마음에 든다며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며,
벚꽃이 꼭 팝콘 같다면서 벚꽃팝콘 노래를 틀고는 신나게 흥얼거리고,
호수 넘어 보이는 놀이동산이 화려하게 빛나는 게 너무 예쁘다며 이각도 저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대고,
중간중간 있는 조형물들을 볼 때마다 신이 나서 포즈를 취하고,
오늘 정말 즐거운 날이라며 필히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솔직히 나는, 그냥 그랬다. 해 지고 간거라 어둑해서 벚꽃은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아서 휩쓸려 다니며 애들을 챙기려니 정신도 없었던 데다,
조형물이고 놀이동산이고 벽화고 간에 다 매번 보던 그런 거니까, 관심도 가질 않았다.
별 흥미없이 애들에게 이끌려 호숫가 산책을 한 바퀴 하다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 벚꽃필 때 호숫가 산책 한 번 한 건데 이게 뭐 별 거라고 애들이 참 좋아하는구나. 자주 해줘야지.'
' 아이들처럼 저렇게 소소한 것에 감탄할 수 있으면 세상 사는 게 좀 더 즐거워지겠다.'
' 나도 어릴 때 저랬을까? 학생 때만 해도 벚꽃 구경 매년 다녔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면서, 흥미를 잃었을까?'
'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걸까? 그래서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뭘 해도 그다지 재미없어 하시는 건가?'
소소한 것에 감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워진다. 요즘 나는 최대한 감정의 기복없이 지내려고 애쓰면서, 기본적으로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평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지내고 있었다. 그래프의 0점 선 근처를 위태위태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달까. 문제는 감정 그래프가 (-)로 떨어지는 것은 쉽지만, (+)로 업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거다.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일 복잡한 일만 가득한 것 같고, 좋은 일은 잘 안생기는 것 같달까. 내가 느끼기에 썩, 기분이 좋아질만한 일이 없는거다.
애들이 신이 나서 날뛰는데, 나는 별 흥미가 없는 게 극명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 애들의 감성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도 화사하게 피어있고, 이렇게 아이들하고 산책 나올 수 있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고, 공기도 깨끗하고 날씨도 적당하니 참 좋지 아니한가! 가라앉아 있는 기분을 기분을 업 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인가보다), 산책이 끝날 즈음 나는 애들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식도 사먹고,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한동안 가라앉아있던 감정 그래프가 조금, 위로 올라온 걸 느낀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생활을 이어나가려다 보니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안그래도 무딘 감성을 더 무디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러다보니 딱히 행복할 일도, 불행할 일도 없었던 거다. 올라가는 길이 있어야 내려가는 길이 있듯이, 양지가 있어야 음지가 있듯이, 감정은 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일텐데, 변하지 말라고 억누르고 살고 있었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면 하루하루 지내는게 너무 버라이어티해지니까, 차라리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으라고, 그렇게 나를 훈련시키며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색하지만,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작은 일에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할 수 있도록. 지금은 너무 생기가 없다. 좋게 말해 무던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활력이 없다. 아마 연습이 많이 필요할거다. 우리 집엔 희노애락을 화끈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으니까,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