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엿보기

by 미선씨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의 회식이 있었다. 6명 중에 나만 과장급이고 다른 분들은 부장님들이다. 일전에 일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고 현재는 이해관계가 그렇게 얽혀있지 않아서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부장님들인데, 이 모임에서는 생소한 재미를 느끼곤 한다.


예를 들자면, 이번 모임에서 대화의 주제들은 이런 거였다.

" 노안이 왔을 때도 라섹 수술이 가능한가?"

" 사춘기 아이는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가?"

" 가족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을 때, 혼자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 아이들 교육비를 효율적으로 지출하려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인가?"

" 퇴사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직업은 어떤 것인가? "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약간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생경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내 또래들이 이야기하는 주제와는 좀 다르다 보니, 낯선 재미가 있어서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아마도 10년 후의 내가 고민할 법한 문제들인데, 얘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나는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 가출쯤은 한 번씩은 한다는 사춘기도 겪어야 하고, 어지간한 대학 학비 저리 가라 하는 사교육비 폭탄도 맞아야 할 테고,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찾지 않을 시기를 대비하여 나만의 취미도 하나쯤은 가져야겠고, 회사 생활은 한계가 있으니 노년 대비할 것은 따로 준비가 필요하고...... 애들 육아기가 끝나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산 넘어 산이라는 것 아닌가.


부장님들은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다. 나보다 영어도 잘하시고, 중국어 일어도 하시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량이나 자격증도 다 갖추고 있고, 특진하신 분도 있다. 나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회사를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었다는 걸, 이 분들을 보면서 느낀다. 나는 그냥 회사를 다닌 거지, 열심히 다닌 건 아니다. 근데, 그렇게 열심히 사신 분들의 고민이란 게 보통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참 안타깝다. 결국 직장인의 말년은 다 그렇고 그런 걸까?

워킹맘 10년 차, 어찌어찌 일하고 아이들도 키우고 하고는 있지만 어디에서도 '잘 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느낌, 뱁새가 황새 따라 하려다 다리 찢어지는 느낌이다. 10년이나 워킹맘 노릇을 했는데 아직도 막내는 4살이고, 아이가 크면 손이 덜 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도통 끝은 보이지 않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요즘, 유난히 많이 들었다. 하나를 놓아버리면 좀 편해지려나 싶었는데, 부장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더 많아 보여서 그것도 정답은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살아봐야 결국 부장님들과 같은 고민에 봉착하게 될 텐데 그것도 별로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다른 미래를 꿈꾸고 싶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조금은 더 가족친화적이고, 조금은 더 개인적이고, 조금은 더 행복한 그런 삶. 방법은? 찾는 중이다. 마흔이 되기 전에 꼭, 찾아내려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정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