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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Sep 10. 2020

돌봄공백의 결과물을 마주하며

엄마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안녕 어린이들~, 오늘 잘 보냈어? 아까 엄마가 하라는 거 했니?


퇴근하니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요즘 하도 학교와 학원에서 연락 오는 게 많아서, 진행사항을 체크하는 게 인사말이 되곤 한다. 오늘의 챙길 거리는 첫째 학교 과제물과 둘째의 영어 학원 숙제다. 학교 과제물은 선생님이 우리 애만 제출을 안 했다며 꼭 챙겨달라 별도로 연락을 하셨던 거고, 둘째의 영어 숙제는 학원 선생님께서 제발 좀 챙겨달라고 전화며 문자며 온갖 연락을 하셔서 나름대로 챙겨보려고 며칠 째 확인 중이던 거다. 지난 며칠간 컴퓨터가 고장이라 못했다길래, 어젯밤 한참을 컴퓨터 조치를 해놨었고, 그러니 오늘은 필히 해놓으라고 일러두었었다.


물어보면서도, 다 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들끼리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자기 관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요즘은 오후에 학교에 3시간씩은 가니까(학교에서 두리샘 프로그램이란 걸 3일 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거기 가서라도 조금은 했겠지, 몇 번이나 일러둔 거니까 시늉이라도 했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근데, 아이들이 묵묵부답이다. 하나도 안 했단다.


하아, 기대치를 어디까지 낮춰야 할까.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러냐 내일은 하자 정도로 넘어갔을 텐데, 며칠간 누적된 터라 오늘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줄이고 줄이고 줄였는데, 너무 안 해서 선생님들이 확인해달라는 것만 좀 하라는데, 어쩜 하라는 건 안 하면서 변명은 매일같이 신선한 걸 마련할까. 의지가 있기는 한 걸까. 얘들, 이렇게 둬도 괜찮은 걸까.


급격히 어두워진 내 얼굴을 보고 아이들이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느꼈나 보다. 그제야 뭔가 잡고 하겠다며 책상에 붙어 앉았다. 옆에 있어달라 놀아달라 요구하는 막내도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엄마한테 말 붙이지 않고 혼자 조용히 논다. 그럼 뭐하나, 이제 밥 먹고 씻고 자면 하루가 끝나는데. 아이들의 하루가 의미 있게 흘러가면 좋겠는데, 왜 이모양인 걸까. 하루 종일 '공부'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운동이나 산책을 해도 좋고, 책을 봐도 좋고, 만들기나 요리를 해도 좋고, 뭐가 됐든 유익한 시간이었으면 좋겠는데, 하루 종일 웹툰 보고 유튜브 보고 밥도 잘 먹지 않고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몇 개월을 흘려보내고 있다.


수학 문제를 풀던 큰애가 우물쭈물 말을 꺼낸다.

" 엄마, 나도 영어랑 일기는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컴퓨터 있으면 자꾸 유튜브 보게 되고, 학교 Zoom 수업 들어야 되니까 컴퓨터를 없앨 수도 없고. 아예 시간을 제한할 수 있어? 그게 나을까? 내가 원하는 건 많은데 잘 모르겠어... 학원에라도 가고 싶은데 요즘엔 못 가니까..."


자기 관리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자기만의 공간도 없고, 시간마다 챙겨주는 어른도 주변에 없고, 하루 종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고, 그 와중에 둘째가 시도 때도 없이 옆에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치고 들어오니 더 집중하기 힘들겠지. 아이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 엄마도 쉽지 않은 거 알아. 그래서 엄마가 뭘 하고 싶을 땐, 할 수 있게끔 주변의 도움을 받거든. 주변에다가 엄마 이거 할 거라고 소문을 내고, 모임도 들어가고. 그래야 하기 싫어져도 꾸준히 하게 되더라고.

엄마도 너희들이 알아서 다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 숙제랑 e-학습터랑 문제집 매일매일 다 하는 건 엄마도 아마 다는 못할 거야. 시간 관리하면서 챙기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 근데 오늘 엄마가 화가 난 건, 너희들이 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여서 그랬어. 몇 번이나 얘기한 거였잖아.  

네가 뭘 하고 싶은지 마음을 정하면, 도와줄게. 네 말대로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고, 학교 수업시간에만 열어주는 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두나랑 좀 떨어지는 건 어때?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는 각자 다른 방에서 서로를 부르지도 말고 할거 한 다음에 만나기. 이런 식으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잘 되리라는 믿음은... 없다. 하루 이틀 시도 정도 해보고 또 무너지겠지. 아이들끼리만 하기엔 의지력이 매우 강해야 할 텐데 그건 어려운 일이니까. 나도 원격에서 신경 쓴다고 쓰겠지만 회의하거나 하면 때를 놓치게 될 거고 그게 몇 번 누적되면 또 도로아미타불 될 것이다. 예전에는, 학교와 학원이 어느 정도 시간 관리해주고 점심밥도 챙겨서 먹이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가족끼리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니 가슴이 답답하다. 솔직히, 거의 다 엄마의 노동력과 신경 씀으로 메꿔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엄마인 나를 더 갈아 넣어야 할 텐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몇 개월의 돌봄 공백기간. 남들도 다 같이 공백기니까, 일단 코로나 시국은 넘겨야 한다며 애써 외면했던 걸 눈앞에 마주한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알면서 모른척했다. 그래도 애들 둘이 같이 있으니까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며, 회사랑 집이 가까우니 그나마 애들 밥은 챙겨줄 수 있다며, 괜찮을 거라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최면하며 몇 개월을 보냈다. 그 결과 둘째는 3학년인데도 아직 구구단을 못 외우고 아토피가 도졌으며, 첫째는 사춘기와 코로나 스트레스가 겹쳐 힘들어한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 이대로 괜찮을 거라 믿어?


휘청이는 날이다. 과연 이 시기에, 회사 프로젝트에 열정을 쏟는 게 맞는 건가. 종일 시달리고 퇴근하면 힘들어서 아이들과 대화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잠들어버리는데. 지금 뭐가 더 중요한가. 아이에게는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말했지만, 속으로는 당분간이라도 휴가를 내거나 휴직하고 아이들 옆에 붙어있어야 하나 고민이 된다. 며칠간의 휴가나 몇 개월의 휴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알 수 없어서 결단하기가 쉽지 않지만, 정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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