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선씨 Sep 07. 2020

이상한 나라에서 자존감 찾기

얼마 전, 인생그래프를 그려보았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주요 사건을 나이별로 기록하고 꺾은선 그래프로 이어 보는 거다. 내 인생그래프는 30살 까진 큰 굴곡 없이 이어지다가, 30살 이후로는 바닥 쳤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는 뾰족뾰족한 모양새였다.



인생그래프의 최저점을 찍은 사건은 아래 두 가지였다.

- 31세, 두 번째 출산, 힘겨운 육아

- 36세, 밀려남. 존버와 탈출 고민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회사에 다니지 않았다면 저런 일은 겪지도 않았을 텐데. 미리 알지 못했으므로 온몸으로 처절하게 겪어야 했고 인생의 최대 우울감을 맛보았다.



 

최근, '내가 최고 다냥'이라는 랜선 모임에 참여해보았다.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을 위한, Self 자기 자랑 모임이었다. 6명 정도의 인원이 밤 10시에 Zoom으로 모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 자존감이 떨어지나요?


나 같은 경우, 주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의 갭이 크면 우울해졌던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조언을 가장한 비난만 할 때, 나름대로 일을 열심히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평가가 박하고 사유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앓듯이 아프곤 했다.


" 애 운다야. 애 좀 달래 봐라. 엄마가 그것도 못하니."

" 아이고~ 추운데 애를 이렇게 헐벗겨서 나왔어. 아기 엄마~ 그러면 안돼! 애 감기 걸려."

" 아니 애기가 그새 살이 쏙 빠졌네. 엄마가 밥도 잘 안 챙겨줬어?"


" 열심히 한 거 알지. 아는데 어필을 못한 거 같아."

" 네가 맡은 상품 그거 만으로는 좀 그래. 알잖아. 휴직도 했고 반일근 무도했으니까. 이번엔 이렇게 됐어. "


아무리 자아존중감의 정의가 스스로 생각하는 주관적인 나의 가치라지만, 주변의 평가가 비난 일색인데 줏대 있게 나의 가치를 주장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모자라기만 한 엄마였고, 일한 내용과는 별개로 나는 그저 회사에 절반만 몸을 걸치고 있는 애엄마 워킹맘이었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 회복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정상이라고 봐주는 곳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현실은 이상한 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지만 온라인 가상세계가 있으니까. 가장 위로를 받았던 곳은 다둥이 카페였다. 워킹맘의 어려움도 알아주고, 딸만 낳았다고 받는 설움도 이해해주는 다둥이 부모들의 모임. 주변의 어설픈 위로가 가슴에 화살로 꽂힐 때,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의 공감으로 마음을 치유했다.  


그리고, 엄마와 워킹맘이 아닌 나를 찾으려 애를 썼다. 나는 글 쓰는 미선씨이고, 피아노 치는 취미가 있는 물결이고, 마을공동체 사업을 주도해서 하는 사람이며, 한 달에 하루는 시간을 내어 '해야 할 일' 말고, 오롯이 나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 상담도 받아보고 병원도 찾았었다. 우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조차, 애를 써서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주변의 도움이 있었으면 훨씬 쉬웠을 것을. 정작 나는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나 혼자 아등바등 헤쳐나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자존감을 높여주는 사람이 있나요?


다른 이들은 '친구'나 '가족'이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딱히 없다'라고 대답했다. 채찍만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어쩌다가 당근과 채찍을 같이 주는 사람이 있는 느낌이다. 무조건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글쎄,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려나. 칭찬에 인색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존감을 붙들기 위해 나는 스스로 도닥도닥한다. 셀프 칭찬이지만, 스스로가 믿을 만큼 진심이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로 칭찬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하려고 오히려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기도 했다.  



모임의 누군가가 말했다.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 너무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곤 해서,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세우려 애쓰고 있는 내가 좀 안쓰럽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조차도 그냥 얻어낼 수 없는 게 현실인 걸, 애도 어딘가에 맡겨야 하고 남편과도 상의해야 하고 회사 스케줄도 조정해야 하는데, 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것들인데. 결국 노력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면 나는 역할에 매몰되고 말 거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는 워킹맘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으니까, 워킹맘이 힘든 건 당연한 거고, 아주 잘해야 겨우 칭찬 한 마디 들으려나... 필사적이지 않으면 나를 위한 시간은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인 나는, 아등바등하며 내 자존감을 붙들어 매야한다. 적극적으로 쉬고,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짠하다. 토닥토닥.

매거진의 이전글 첫째 딸과, 둘만의 데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