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한 지난 몇 개월간, 아이들이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는 것을 속절없이 보고만 있었다. 컨트롤을 하고 싶어도 '근무'상태여서, 짬짬이 봐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회의 중간중간, 업무 중 잠깐씩 애들을 들여다본들, 효과 없는 잔소리나 부질없는 원망만 하게 된다.
'숙제는 했어? 어서 공부 안 하니?!'
'몇 시간째 그러고 있니? 이제 그만 좀 보지?'
'와 정말 너무하다 너네들'
공부뿐이랴, 집에 있어도 애들 세 끼 밥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오히려 애들이 내 점심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밥해줄 시간이 없어 자주 아점과 점저, 겨우 두 끼만 먹곤 했는데, 중간중간 배고프다며 아무 간식이나 집어먹는 아이를 볼 때마다 어떻게 더 할 도리는 없고 마음만 쓰라렸다.
지난주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울분'이라는 것이 이런 감정인가 보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내일모레 학교 가는 막내는 아직도 한글을 모르고, 초등 고학년이 되는 둘째는 아직도 맞춤법이 엉망이고, 큰 애는 그 재밌다는 해리포터 책 한 권도 안 읽는다. 다른 공부도 엉망이긴 매한가지일 테고 생활습관도 어그러진 지 오래인데, 유독 '국어'를 제대로 못한다는 게 화딱지가 난다. 국어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진정 애들이 알아서 하는 것 따위 없구나,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구나, 점점 화가 끓는다.
애들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뭘 했나. 사실 모르지 않았다. 모른 척했던 거지. 출근하면 보이지 않으니까, 회사 다닌다는 핑계로 굳이 챙겨보지 않았다. 그러다 두어 달 재택근무를 하며 맞벌이 애들이 놓인 현실을 눈앞에서 목도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하다.
나는 엄마 역할을 직무 유기했다.
코로나로 학교도 학원도 안 가고 부모는 맞벌이로 바쁜데, '알아서' '척척' '좋은' 생활습관을 챙길 수 있는 '어린이'를 기대했던 건가. 애를 원망할 게 아니라 결국 내가 잘못한 거다. 늘 휴직을 고민했지만 실행하진 않았는데,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진다.
한창 회사는 신규조직과 인력을 세팅하는 시즌이다. 마음을 정했으니 R&R이 확정되기 전에 말하는 게 도리일 듯하여 직속 관리자에게 언질을 했다.
저, 휴직해얄 것 같아요.
말을 꺼내자마자 눈물이 쏟아진다. 세상에, 설마 일을 하고 싶어서 우는 건가. 나는 뼛속까지 '워킹'맘이었나. 울음이 나오는 이유를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 사직도 아니고 휴직인데, 육아휴직 처음 해본 사람도 아닌데. 일을 쉴거고 일을 넘길건데 대체 왜 울음이 나오는거지. 설마 남은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그러나. 아니 내가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이었어?
며칠간 마음을 추스르고 부서장과 면담을 하며 휴직을 확정하는 자리에서도 또 울고 말았다. 도대체 왜이러지? 여태껏 버틴 커리어가 끊기는 게 속상해서 그런 걸까? 좋은 고과 하나 없는 이 커리어가 나에게 이렇게 중한 거였나?
갓난애 키울 때 정말로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휴직을 했었을 때는 아주 당당하게 회사에 요구했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휴직을 고민했던 때도 물론 많지만, 그때는 일은 많고 기대만큼의 보상은 없는 회사에 지쳤기 때문이었고, 분한 마음으로 휴직계를 던져야겠다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아이들을 돌봐야 할 때라는 게 확실해져서 잠시 커리어를 쉬겠다는 건데, 당당하지도 분하지도 않고, 서럽다. 너무너무 서럽다. 똑같은 육아휴직이래도, 배경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다.
정말로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워킹맘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서러운 걸 수도 있고, 일에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았던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걸 수도 있고, 이 시기의 휴직이 커리어에 있어서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마도 전부 다 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결정되고 나니 슬슬 마음이 가라앉는다. 생뚱맞게, 회사 밖 창문으로 보이는 한강뷰가 참 이뻐 보인다. 당분간 이 한강뷰도 안녕이겠구나. 정신 차리고, 인수인계 준비를 해야지. 회사일 어서 정리하고 기왕 마음먹은 거, 아이들하고 잘 지내보자. 더 시기를 놓치기 전에.
마음을 다잡고 퇴근해 집에 돌아오니 둘째가 울고 있다. 첫째랑 레고를 누가 가져갔는지 때문에 한바탕 했단다. 말이 툭, 튀어나온다.
'에그 두나 많이 속상했겠다. 이제 그만 울어. 엄마도 오늘 회사에서 많이 울었는데.'
'엄마는 왜 울었어?'
'휴직한다고 말했는데, 울음이 나오더라'
'응? 휴직하는데 왜 울어? 어떤 만화에서 봤는데, 휴직한다고 신나서 춤추던데?'
그러게나 말이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휴직이란 걸 하는데 왜 울고 난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