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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Aug 13. 2019

거짓말쟁이

나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그렇듯 유치원을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치원이 아니라 교회에 부설로 들어가 있는 밀알 선교원이었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거의 지워진 편이라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치원과 겸해서 운영되고 있던 미술 학원에 다녔던 기억이 내가 받은 '교육'의 시작이었다. '미래'라고 하기에도 너무 먼, 장래의 가능성을 시험하기엔 심히 어렸던 아이들이 다니는 미술 학원에선, 마치 돌려 막기를 하듯 최우수상, 금상, 대상 따위의 트로피를 원아들에게 뿌리고 있었다.


당연히(?) 나 역시 원내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기린 같은 걸 몇 마리 그려, 최우수상을 받았던 적이 있다.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죽죽 그렸던 기린 몇 마리로 최우수상을 받다니. 지금 돌이켜보니 원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선심이라도 쓰듯, '귀댁의 자녀가 우리의 교육을 이렇게 잘 받고 있습니다'라는 원장의 확인증 같은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미술 학원에서 어린 시절 치고 꽤나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몇 장면들을 떠올려 보자면, 재롱잔치에서 난생처음으로 대사를 외워가며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던 때나 원생들을 통학시키던 버스에 치여 죽은 친구, 그리고 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즈음에 학원생들을 모두 앉혀놓고 학원 선생님이 주말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물어보는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주말에 무얼 하며 보냈나' 코너는 대부분 평이하게 흘러갔던 학원 생활 중 개인적으로 최악의 시간이었다. 우리 집만 그랬는지 그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 당시 내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셨었다. 아마 내가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그래서 당연하게도 주말에 나 혼자 집에 남겨지는 시간이 많았다. 외아들에다 학교는 아직 들어가기 전이고 휴대폰이나 삐삐도 없던 고릿적 시절이라 친구들이라곤 부모님들끼리 아는 친구나 학원 아이들이 전부였는데 다들 멀리 살거나 부모님과 함께가 아니면 주말에 따로 만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 당시 우리 어머니는 매너티라는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에서 식당 일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하나 있는 기술인 용접으로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던 시절이었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게,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이 바로 집 앞에 위치해 있어서 미술학원 등하교 시간에 식당에 들러 어머니를 보고 집에 가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머니께서 짬짬이 집에 들르실 수 있었다.



어찌 됐든 딱히 평일이고 주말이고 없던 살림살이셨다. 그래서 주말 동안에 나는 엄마가 개당 2천 원 주고 빌려다 주신 비디오를 보며 자랐다. 후뢰시맨이 내 친구였고 바이오맨이 내 동생이었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의 미술 학원에서 열리는, '주말에 무얼 하며 보냈나' 가 죽도록 싫었던 기억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우리 미술 학원의 원생 수는 대략 2~30명쯤 됐을거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주말에 무얼 하며 보냈는지 일종의 자랑을 하는 시간을 가지며 학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친목을 도모했다. 끽해야 인천 끄트머리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에 살면서 다들 가정 형편은 좋았는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여행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월요일이 대부분이었다.



학원에 등록한 초반에 내 주말 이야기는 나름 먹혔(?)다. 여러 만화영화와 전대물을 섭렵해가는 나를 보며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자기 부모님들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화영화를 빌려보는 걸 반대한다며 부러워하는 아이들이 대다수였지만 몇 주가 지나자 나의 주말 레퍼토리는 떨어져갔고(매 주 비디오를 빌려보지는 않았으니까) 급기야 학원 선생님께서 '현균이는 주말에 비디오를 참 많이 보는구나' 하며 뻔한 내 주말 이야기에 슬슬 지루해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거짓말이었다. 학원의 다른 아이들은 죄다 주말을 보내고 오면 이름도 어려운 국내외의 유명 관광지를 다녀온 걸 앞다투어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게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주말에 늘 없는데 너희 부모님은 참 여유가 많으시구나. 이왕 거짓말로 다녀온 여행, 일본과 중국을 거의 매주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학원 아이들이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그럼 비디오는 이제 못 보는 거냐며 되묻는 친구에겐 평일에 학원 끝나고 가서 본다고 대답하자 더 부러워했다. 그때 했던 '거짓말' 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코흘리개 꼬맹이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내 말을 무조건 믿는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눈빛과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 남보다 더 우월함을 느끼게 되는 그 쾌감. 원생들에게 물어보는 주말 근황은 끽해야 한 시간도 진행하지 않는 짧은 쾌감이었지만, 나에겐 말도 못 하게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는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비록 어릴 때였지만 부모님께 이번 주말에 어디 좀 가자고 졸라대지 않았다. 분명히 어렸을 땐 우리 집 살림이 그렇게 빠듯한 걸 몰랐었을 텐데 아마 주말에도 바쁜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예전부터 봐왔기 때문에, '당연히' 무언갈 바라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 게 아닐까 싶다.



나의 주말 거짓말 해외여행 대잔치는 근 한 달도 안 돼서 들통이 나 버렸다. 주말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는 나의 거짓말을 미심쩍게 생각한 학원의 어떤 선생님이, 우리 어머니를 나의 하교 시간에 맞춰 소환하여 물어보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웃어넘길 해프닝이었는데 굳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학원에까지 불러들이는 선생님이 싫었고 그날따라 거짓말 한 나를 혼내지 않은 어머니가 의아했다. 평소에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면 종아리가 부르트도록 회초리를 맞았었는데 말이다. 나중에 가서야 왜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지 알게 됐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와 매 대신 맛있는 돈가스를 해주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의 아이들에겐 돈가스도 좋지만 주말마다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노군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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