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드라마는 유치해서 거의 안보지만 친구가 하도 재밌다고 그러길래 한 번 찾아서 1편 부터 16편 까지 쭉 몰아서 봤다.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영화 극한직업의 감독인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였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천우희가 나온다고 해도 관심도 없던 드라마였는데 이병헌 감독이 연출과 각본까지 썼다고 친구가 그래서 슬쩍 봤는데 초반부는 확실히 상당히 재미있었다.
작가지망생인 임진주(천우희)를 시작으로 과거에 지난했던 사랑이야기를 풀어내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남자친구를 7년 동안 만나면서 안 싸운 날보다 싸운 날이 더 많은 것 같은 진주의 오래된 연애는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그녀를 기준으로 뭉치는 세 친구, 다큐멘터리 감독인 이은정(전여빈), 돌싱이자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황한주(한지은) 가 지닌 개개인의 에피소드들은 흡입력이 상당했다. 세 여주인공의 애인이나 메이트로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와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진 다는 것. 특히 다짜고짜 아무때나 뜬금없이 등장하는 PPL은 시청자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하지만 이게 이병헌 감독 스타일의 개그라고 한다면 드라마 차기작은 접어야 할 것이다. 멜로가 체질이 방영되던 시기의 최고 시청률은 1.8%.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방송국놈들에겐 정말 시청률이 전부다. 뻔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를 꿈꾼 드라마지만 로맨틱도 코미디도 제대로 못잡은 결과물을 낳았다. 뻔하지 않아서 소수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제작진 본인들도 알고 있는 것 처럼 마지막회에 대사로 나열하긴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의 진주가 쓰던 '서른되면 괜찮아져요' 드라마 시나리오 안에서 놀던 장기말같은 캐릭터 전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됐을법한 설정이었다.
잉여캐릭터들이 많은데다 상당히 겉도는 느낌이고 진주의 구남친인 김환동(이유진)이 진주에게 거절당하자 그대로 쓰레기통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는 걸 보아, 작가나 감독이 과거의 연애에 안좋은 감정들만 잔뜩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지독한 과거의 사랑이 60%, 말랑말랑한 애정씬이 10%, 개그가 10%, PPL이 나머지 20% 정도를 이루는 드라마 되시겠다.
배우 천우희를 영화 써니(2011)에서 본드를 흡입하던 상미역 때 부터 좋아했던 팬이었는데 역시 제 때 방영할 때 안보길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 드라마였다. 진주는 그렇게 엉뚱하지도, 그렇다고 쾌활하지도 않은 오묘한 캐릭터라서 역시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파트너인 손범수(안재홍) 감독과의 캐미는 그럭저럭 볼만했지만 안재홍 이미지가 너무 개그틱해서 감정이입 자체가 어려웠다. 진주보다는 오히려 친일파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만난 남자친구를 먼저 하늘로 보낸 이은정의 스토리가 더 뭉클했다. 애만 낳고 본인의 인생을 살겠다며 이혼을 요구한 노승효(이학주)에게 버림받은 황한주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았고, 동창과 메니지먼트 관계로 만나서 로맨스까지 이어진 이소민(이주빈)-이민준(김명준) 에피소드들도 좋았다.
수다 블록버스터라고 자신있게 내건 제작진의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로 세 여자(+게이 하나)의 수다 씬은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고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연애사를 종과 횡으로 나열하기 급급한 요상한 드라마다. 영화 싱글즈(2003)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느낌을 바라고 본다면 65%의 확률로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멜로가 체질 OST에 들어있는 장범준의 노래는 상당히 좋다. 이쯤되면 장범준을 통기타계의 훅잽이라고 불러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듯(드라마 끝나면 계속 머릿속에 가사와 멜로디가 맴돌게 된다). 그리고 각 회차마다 펀치라인이 되는 대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연애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20,000% 공감할만한 명대사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그게 또 시도 때도 없다는게 함정.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은 뭐니해도 은정이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좀 안아달라고 할 때.
딱히 전여빈 배우가 멜로가 체질에 안경을 자주 쓰고 나와서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고 2017년에 개봉했던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어 기억에 많이 남아있던 배우였다.
드라마 초반에 부동산 아저씨께 월세 가격을 듣고 '거짓말~' 할때 진짜 나만 빵 터짐♥︎
초반에 맹~한 연예인 캐릭터로 등장해서 의외의 연기력은 선보였던 이주빈 배우도 상당히 연기를 잘했고.
당연히 한주의 짝은 같은 회사 부사수인 추재훈(공명)이 되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클럽에서 만났던 어깨넓은 남자가 마지막회에 등장해서 전개 정말 거지같이 짰다는게 눈에 보일정도. 세 여자가 클럽 갔떤 씬이 언젠데 마지막회까지 클럽남이 코빼기도 안 비추다가 그렇게 갑자기 나온다고??!
드라마 내내 고구마 캐릭터만 보여주던 재훈과 하윤(미람)의 영원히 끝나지 않는(!) 동거 덕분에 두 사람이 나올 때만 되면 TV를 꺼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었다.
정말 드라마랑 영화는 생태계 자체가 다르다는 걸 이병헌 감독 스스로가 잘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진짜 드라마 폭망해서 시말서 안 쓰게되나 몰라...). 이쯤되면 멜로가 체질 드라마보다 장범준이 냈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음원수익이 더 짭짤할듯.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멜로는 체질에 좋은 대사는 많다. 아무때나 급작스럽게 등장한다는게 문제지. 시나리오에서 명대사들만 기점으로 삼아놓고 앞뒤 전개를 대충 끼워맞춘듯한 느낌이었달까. 그래도 드라마 초반은 충분히 재미있게 봤으니 명대사 장면이 박힌 이미지컷들은 올리고 갈게(제작진 본인들이 맨 마지막에 엔딩 시퀀스에 굳이 대사를 박아넣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원제는 '서른되면 괜찮아져요' 다. 멜로가 체질이 드라마 제목이긴 하지만 의미도 맥락도 없는 제목임.
서로 할퀴면서 계속 함께하는 재훈-하윤 정말 싫었음.
진짜 은정이 마지막회까지 죽은 남친 혼자 계속 보는데 너무 안쓰러웠음 ㅠㅠ
가장 의외의 캐미를 보여주던 소민-민준 커플.
은정이 안아주는 장면이 최고 베스트!
가장 맥락없고 재미도 없던 캐릭터들.
진짜 뭐냐 이게.
세 여주인공의 과거 사랑을 나열하던 도입부 까지가 딱 볼만한 드라마였다.
장봄준 최고♥︎
여러모로 아쉬운 드라마가 됐다. 멜로가 체질 시즌2 는 안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