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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Jan 18. 2020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리뷰

아름답고 아름답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 처음 느껴봐.

- 뭘?

- 후회를.

- 후회하지 마, 기억해.

사랑에 빠진적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어. 바로 지금이라고.

- 숫자 하나 말해봐.

- 28.

뒤 돌아봐.












아름답고 아름답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인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를 의뢰받는다. 결혼이 하기 싫어서 자신의 초상화 역시 그려지는 걸 꺼려하는 엘로이즈 덕분에 마리안느는 '산책 친구' 라는 개념으로 엘로이즈를 응시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여성은 어디에서도 발언권이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진작에 정략결혼이 결정됐던 엘로이즈의 언니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렸다. 엘로이즈의 엄마인 '백작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둘째 딸도 똑같은 결정을 할까 두려워 어두컴컴한 저택에 엘로이즈를 가둬버린다. 결혼은 시켜야하니 상대 남자에게 보낼 딸의 초상화를 그려야 되는데 어머니의 속셈을 뻔히 아는 엘로이즈는 기껏 화가들이 어렵게 그린 자신의 얼굴을 뭉개버리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도 거부한다. 여성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시대이기에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 써서 작품을 그리는 마리안느는 자신이 옆에서 보고 느낀 엘로이즈를 기억만으로 열심히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백작부인은 5일동안 집을 비우게 되고 그 사이 두 여인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어린 소녀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마리안느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들판위에서 불이 붙은 드레스를 입고있는 여인의 그림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는 소녀들. 마리안느가 산책을 도와주는 역할로 백작부인의 집에 갔을 때 노동자 계급의 여인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던 곳에서 엘로이즈에게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던 그 날을 떠올리며 그렸던 그림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이 그림의 큰 사이즈가 있었으면 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아하고 세심하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눈빛 하나, 숨결 하나, 장작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하나마저 감독의 숨결을 불어넣은 듯, 어딘가 애틋하고 어딘지 모르게 뭉클하다. 여성이 지닌 모든게 부정되는 시대에 살면서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타인의 몸에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게 되는 과정은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도발적이다. 






백작부인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소피(루아나 바야미)'의 임신중절 과정은 18세기 프랑스 저변에 깔려있던 남성우월주의를 대변하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딸을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 댁의 안방마님으로 앉힐까 궁리만 하던 백작부인의 부재 덕분에 마리안느와 멜로이즈는 충동적이지만 하지말라면 더 하고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휩쓸려 서로를 더욱 열렬히 탐닉하게 된다. 5일 동안 계급과 신분, 지위를 모두 벗어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상대에게 빨려들어가는 두 여인의 일탈은 한낱 열병같은 하룻밤 꿈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갈 사랑의 기억으로 남는다.





특히 엘로이즈가 밤에 읽었던 '오르페우스' 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꿰뚫는 주제로 사용된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저승까지 내려가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다시 지상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영화 말미에 오르페우스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라던 엘로이즈의 대사와 그 상황을 서로 인사하듯이 표현한 마리안느의 그림이 참 가슴아팠다.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를 슬프게 그린 옛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안느의 그림은 두 사람이 작별인사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결국 엘로이즈의 초상화가 완성되고 백작부인이 돌아오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환영을 본다.



이 장면 두어 번 나오는데 좀 무서웠음.



시종일관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엔 떠나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주어진 시간에라도 상대방을 아낌없이 사랑해주려는 마리안느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평생 사람과의 왕래도 없이 음악하나 제대로 들어본 적 없다던 엘로이즈는 몇 년뒤에 마리안느도 참여했던 전시회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마리안느의 눈에만 두 번 보여지게 된다.



28 page.



끝이 뻔히 보이는 시한부적인 연애라 더욱 깊게 가슴에 남았고 그 어떤 연애보다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추억된다. 마지막에 엘로이즈와 그녀의 딸의 초상화를 보면서 눈물짓는 마리안느와 그녀의 건너편에 홀로 앉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리며 눈물을 쏟아내는 엘로이즈의 감정연기가 유독 절절하게 와닿는 영화다.


+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엠마 왓슨, 그리고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이 모두 들어있는 프랑스 신예 배우, 노에미 메를랑의 카리스마 넘치고 우아한 연기력 덕분에 기본적으로 79%는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랑 정말 상당히 많이 닮았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2019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상영관이 상당히 적었는데 다행히 cgv 아트하우스에서 상영하고 있어서 얼른 가서 보았다. 곧 설 연휴라서 금방 내릴게 뻔해보였거든.


cgv 아트하우스


혼자 영화를 볼 때마다 가끔 아쉬운 건 영화를 같이 보고 상영관을 나오면서 이런저런 느낀점들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 블로그에 영화 감상평을 쓰기 시작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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